[최규철 칼럼]다시 6월을 빼앗기는가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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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메시지는 누가 뭐래도 6·25전쟁이다. 200만여명이 희생된 아픔은 아직 남았고 쓰리다. 왜 호국보훈의 달이라 하는가. 호국영령의 애국심을 기리자는 뜻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6월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주 6·15선언 4돌에 벌어졌던 일을 굳이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바로 본론에 들어가자. 북측은 왜 100여명의 대규모 ‘일꾼’을 남쪽에 보냈는가. ‘김대중도서관 주최 국제토론회’와 인천 ‘우리민족대회’의 역사적 의미가 올해 유난히 두드러졌기 때문인가. 나는 아무래도 그 의미를 못 찾겠다. 오히려 북핵으로 불거진 긴장 때문에 6·15선언에 대한 남쪽 분위기는 가라앉은 편이고, 6자회담에 걸려 그 의미도 퇴색하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올해 유별난 의미를 부여한 것은 북측이다. 왜일까.

▼친북좌파 고무전술▼

북측은 ‘우리 민족끼리’를 되풀이했고 ‘보안법 폐지’ 등 해묵은 통일전선전술을 다시 꺼냈다. 그 가운데서도 ‘6·15 후에는 미국을 가장 혐오스럽고 위험한 나라로 보며 북은 함께 살아갈 동포로 옳게 보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이겠는가. 현 정권이 들어서며 남한사회에 늘어난 ‘반미친북’좌파에 통일전술의 성공을 확신하게 됐다는 의미 아닌가. 더욱이 4월 총선에서 현 집권세력이 국회 제1당을 확보한 것에 고무돼 친북좌파를 부추기고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는 아닌가. 올해는 또 54년 전 6·25전쟁 때 한국을 도우려 왔던 미군이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겠다며 짐을 싸는 해라는 점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을 비난하며 민족공조를 유난히 강조한 이유가 한미동맹을 흔들기 위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남북 평화공존을 위해 선의의 교류협력이 왜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핵문제로 평화도, 공존도 불확실한 판에 ‘통일’로 모든 것을 덧씌우고, 북이 ‘조국’을 선창하면 남이 ‘통일’이라고 따라가는 식의 행사가 과연 교류요 협력인가. 그것은 일방적인 정치 선전이요 이념 공세다. 물어 보자. 우리가 돕겠다는 것이 영양실조로 깡말라 애처로운 북녘 어린이와 동포인가, 아니면 이들을 그 지경에 몰아넣은 북한 정권인가. 지금 북한 정권은 ‘동포’를 내세워 흐리멍덩해진 남측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는 줄을 알고나 있는가. 북측이 되풀이하는 민족과 통일 최면술에 남쪽은 단단히 걸려들었다. 공산당 전략의 기본이 반복인 줄 왜 모르는가. 지난주 북측이 통일전선전술을 펼치는 동안 남측 당국은 아무런 소리도 못 냈다. 하기야 전·현직 대통령이 참석했으니 할말이 있었겠는가. 북측 대공세에 남측은 휘말렸고, 호국의 달 6월의 의미도 산산조각 났다. 어쩌다 이렇게 맥없이 밀리는 처지가 됐는가. 이러고서 누구에게 애국심을 말할 수 있는가. 남쪽의 약세를 본 북측이 앞으로 유사한 공세를 계속할 것은 뻔한 일이다.

▼‘어찌 이날을 잊으랴’▼

그러나 북측은 큰 실수를 했다. 친북좌파 확산 침투공작은 계획대로 완수했겠지만 잊혀지고 있던 남쪽의 호국영령을 일깨웠고 6·25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50년 8월, 여섯살 막내였던 필자는 서울 집을 떠나 피란민 행렬에 끼여 하루종일 걸어서 안산으로 피란 갔다. 안양역을 지날 때 북한군 열차를 공격하는 미군기 기총소사에 정신없이 소달구지 밑으로 숨었다. 1·4후퇴 때는 대구로 가는 화물열차 꼭대기에서 잠들면 떨어져 죽는다고 식구들끼리 허리를 끈으로 묶고 꼬박 이틀을 버텼다. 한겨울 별빛 아래 화차 위에서 찬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대구에선 동인동 천변 추운 길에 사과 몇 개를 팔러 나갔다가 배가 고파 절반을 먹고 말았다. 혼이 날 줄 알았지만 엄마는 말없이 막내를 껴안고 울기만 했다. 부산 남부민피란국민학교 천막교실에서는 베티고지 영웅 김만술 소위의 용맹스러운 이야기에 감동했다.

54년 전 내일 6·25전쟁이 일어났고, 우리는 6월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6월을 빼앗기고 있다. 이라크 인질 김선일씨 피살 충격까지 겹친 6월, 자꾸 분노가 치민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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