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역사에 대한 예의

  • 입력 2006년 12월 15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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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2월 9일(음력), 보국안민(輔國安民·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하게 함) 척왜(斥倭·일본의 침략을 배척함)의 기치(旗幟)로 동학농민군을 이끌다가 체포된 전봉준(全琫準)에 대한 1차 심문이 열렸다. 법아관원(法衙官員)이 물었다.

“작년 3월간 고부(古阜) 등지에서 민중을 도취(都聚)하였다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어 그렇게 하였는가?”

전봉준이 답했다.

“그때 고부군수는 액외(額外)의 가렴(苛斂)이 기만냥(幾萬兩)인 고로 민심의 원한으로 거사(擧事)가 있었다.”

증손녀의 108배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진술서)에 따르면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은 마을 저수지 둑을 다시 쌓게 한 뒤 물세를 징수하고, 농민들에게 세금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황무지를 개간케 하고도 세금을 내게 하고, 자기 아버지 비각(碑閣)을 세운다고 군민의 재물을 거둬들이는 등 학정(虐政)을 거듭한 탐관오리(貪官汚吏)였다.

그로부터 112년의 세월이 흘러 ‘조병갑’이 역사 밖으로 이름을 내밀었다. 그의 증손녀가 조기숙(趙己淑)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라는 이유로. 조 씨는 일주일 전 ‘동학농민혁명 112주년 유족의 밤’ 행사에 참가해 “동학혁명군의 영혼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있다”며 유족들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기록되는 것인가, 해석되는 것인가.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랑케는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기록’을 강조했고 영국의 E H 카는 ‘과거를 오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가치의 재평가’에 무게를 두었다.

두 학자의 말이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다. 기록된 것만이 역사라면 역사란 ‘승자(勝者)의 기록’일 수 있다. 객관적 기록이라 한들 지배자의 기록과 피지배자의 기록이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의 가치를 재평가한다면 그 관점의 기준과 재평가의 주체는 누구인가.

동학농민혁명도 당시 조선왕조나 양반계급의 관점에서는 ‘동학란(東學亂)’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동학농민혁명의 근본 원인도 아니었다. 조병갑은 몰락하는 봉건왕조의 무능과 부패, 국정 문란(紊亂)이 낳은 일개 벼슬아치였다. 조병갑은 농민과 민중의 분노에 불길을 댕겼을 뿐이다.

증손녀가 과연 그런 증조부의 죄를 대신해야 하는가? 조 씨는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매일 아침 108배를 한다고 했고, 동학농민군의 유족들은 그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를 두고 ‘역사의 화해’라고 하는데, 대통령홍보수석이던 작년 8월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시고 국민은 아직도 독재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강변(强辯)했던 조 씨로서는 화해에 앞서 ‘역사에 대한 경외(敬畏)’를 먼저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화석화된 역사보다는 카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서의 역사가 매력적이다. 흔히 말하는 ‘역사의 교훈’도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서 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나 대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반동(反動)이 반동을 낳는 ‘역사에 대한 무례(無禮)’가 되풀이될 수 있다.

抗日민족사에 대한 무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보는 것은 분단과 전쟁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 낸 국민에 대한 무례다. 일제 강점기를 ‘근대의 주체적 이행 과정’이라고 보는 역사 해석은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이자 수탈(收奪)과 동화(同化)의 대상으로 삼은 일본제국주의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비록 강요된 결과물로서 근대화의 하부구조가 이뤄졌다 한들 그것을 주체적 이행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항일(抗日) 민족사에 대한 무례다. 하물며 증거(역사적 기록)가 없다고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마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역사에 대한 모독(冒瀆)이다.

4·19는 혁명이고 5·16은 쿠데타이며 유신은 독재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배타적 가치가 아니다. 어느 한쪽만을 치켜세우는 극단의 해석은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해석은 다양할 수 있을지라도 역사의 본류(本流)에 대한 무례까지 용납될 수는 없는 일이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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