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 칼럼]軍이 바로 서야 하는 이유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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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 유지를 위해 가장 긴요한 교육 경제 국방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교육은 이미 치유가 어려운 고질에 걸려 있는 꼴이고, 경제는 갈팡질팡하는 정책 때문에 그나마 벌어 놓은 국부를 까먹고 있다. 주적 개념이 없어지고 민족 공조가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 어수선하던 군에서는 기어이 지난 주말 끔찍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유족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참사이며 국민에게는 가슴 내려앉는 끔찍한 사건이다.

따라서 군에 대한 분노와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하긴 하다. 그러나 지금 군을 꾸짖기만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온 나라가 정신을 가다듬어 이런 비극이 발생한 원인도 살펴보고 군이 바로 서도록 도와야 할 때는 아닌지 말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을 맡고 있는 군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쏟아 왔는지, 그들의 노고에 충분히 감사해 왔는지, (서해교전 등) 국가를 위해 장병들이 희생됐을 때 범국가적으로 애도할 만큼 제정신이었는지 돌이켜 보자. 이번 사건은 군과 정부, 사회의 공동 책임이며 그러기에 해법의 지혜도 함께 내놓는 것이 옳다.

국방 없는 경제는 자물쇠 없는 은행금고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를 위해서도 군은 다시 바로 서야 한다. 한 나라의 경제 발전은 경제활동 종사자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없다. 경제인과 정부 관리 그리고 교육, 사회조직의 수준이 총합적으로 반영된 결과가 곧 그 나라의 경제 역량이다. 생산 현장의 근로자나 수출 현장의 비즈니스맨이 경제 발전의 촉수라면 군(軍)은 거기까지 뻗어 있는 신경과 혈관을 지켜 주는 근육 같은 존재다. 문약했던 시절 우리는 국방력이 약해 늘 외침에 시달려야 했고 그 결과 경제는 피폐해졌으며 국방은 더 허술해질 수밖에 없었던 악순환을 역사 속에서 경험해 왔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그 과실을 기업의 경영진과 근로자들이 함께 나누어 왔다. 경제 발전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국민 모두가 수혜자였고 특히 정치인들은 지금 과분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국방 현장의 군은 기여도에 비해 얼마나 큰 보상을 받았을까. 명령에 따라 보따리 싸 들고 임지를 전전하며 청춘을 보내야 했던 군인들에게 강남 부동산이나 자녀의 사교육은 사치스러운 화제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이 주식시장 전광판에 눈길을 쏟고 있을 때 그들은 최전방에서 적진만 응시해야 했다.

군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는 것은 국방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위인전 목록에 군인이 그토록 많다는 것은 그 임무의 숭고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명예와 충성심으로 상징되는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이다. 한정된 국가 예산으로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어렵다면 최소한 그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친북 반미의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군은 존재 이유에 혼란을 겪었고 지휘관들은 정치판에 의해 자존심을 상해 왔다.

일주일 후인 29일은 서해교전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해군 장병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50, 60년 전 과거사를 캐는 데 눈에 불을 켠 정부가 불과 3년 전 과거사에는 왜 이다지도 무심한가. 당시 나라를 지키다 천국에 먼저 간 고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전쟁 영웅에게 국민이라도 나서서 함께 명복을 빌고 부상 장병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당시 전투에 참가한 해군 장병을 비롯해 대한민국 국군 모두를 사랑하고 그들의 직업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자. 그리고 나서 국민의 간절한 기대를 모아 군에 환골탈태의 모습을 요구하자. 다시 한번 최전방 감시소초(GP)에서 국방의무를 수행하다 안타깝게 희생된 장병들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이규민 경제대기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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