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새아침 에세이]정채봉/처음으로 돌아가리라

  • 입력 2000년 1월 5일 08시 31분


▼'마음의 문' 열고 처음으로 돌아가리라▼

김수환 추기경님의 귀향길에 동행한 적이 있다. 한티재를 넘을 때라고 기억하는데 추기경께서 나한테 이런 말을 하였다.

“인간에게는 ‘나’가 셋이 있지요.곧 내가 아는 ‘나’ 그리고 남이 아는 ‘나’가 있으며 나도 남도 모르는 ‘나’또한 있는 거예요.”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에 대해서는 쉽게 인정되었다.그러나 나도 남도 모르는 ‘나’에 대해서는 한참 생각하게 되었다.나는 추기경께 되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마음’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었다.대중가요에도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구절이 있듯이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이 마음에 의해 인간들은 행복농사를 짓기도 하고 불행농사를 짓기도 하지 않는가.

풀잎을 흔드는 실바람 한줄기,호수에 이는 여린 파문 한낱에 조찰한 기쁨을 느끼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인격을 타락시키고 자신을 파탄케하는 독사의 독을 내뿜는 마음도 있다.일찍이 조사(祖師)들은 인간의 마음은 태어난 그대로로서 형태도 없고 색깔도 없고 이름도 없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전부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유주들이 형태를 만드는가 하면 색깔을 입히고 각종 핑계와 구실을 부여하였다.어떤 사람은 풀뿌리 하나도 꽂을 데가 없는 모래밭같은 것인가 하면 어떤 사람은 봄비 내린 대지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또 어떤 사람은 회색벽돌 색깔인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푸른 바다와 같은 색깔이기도 하다.더러는 음모의 터로 이용하는가 하면 더러는 평화의 터가 되기도 한다.

본디 마음 편에서 본다면 파업하고 싶고 떠나고 싶은 일이 하루에도 몇십번씩 있을 것이다.마음을 속이고서도 뻔뻔스럽게 “양심을 걸고”라고 증언하는가 하면 아픈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 한번 꿈쩍하지 않는 주인들도 있으니까.그리하여 마침내 낭패를 보게 되면 뒤늦게서야 가슴을 치며 술 담배 약물 등을 치료약으로 써서 몸까지 망치는 인간들이지 않은가.

늘 몸보다 먼저 일어나며 일보다 먼저 느끼고 심지어 꿈속에서까지 활동한다.몸은 차라리 피곤하면 쉬게 해주고 심해지면 약까지 주나 마음은 그저 혹사 당하기만 할 뿐이다.도스토예프스키의 말대로라면 지금도 인간의 마음은 선과 악마가 싸우는 전장인 것이다.

나는 평소 마음 타령을 많이 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마음을 사나운 황소에,교활한 여우에 비교하기도 했고 그 어떤 고문과 폭력으로도 정복할 수 없는 것,마음먹기에 따라 지옥과 하늘나라가 바뀔 수 있다는 주제의 글을 쓰기도 했었다.그러나 내게 막상 마음을 비워야 할 때가 왔을 때 실제화가 되지 않는 허구성을 깨닫고 아연하였다.

내 몸에 반란군의 진입상태가 심각하다는 주치의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마음 정리가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었다.그동안의 인연과 애증은 강 건너의 네온사인 도회에 훌훌 벗어놓고 왔노라고.

그런데도 저녁이면 불면에 시달렸고 어쩌다 잠이 들어도 네온사인 도회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나타나서 설쳐댔다.다시 돌아보니 거기에는 아직 물러나지 않은 내 세상의 인연들과 애증이 다른 곳 아닌 내 마음의 창문에 비춰지고 있었다.

그 무렵 나의 기도는 내 마음 속의 그림자들을 사라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어렸을 적,불빛을 받아 창호지에 두 손으로 지어 보이던 그림자,그 환영에조차 깜짝깜짝 놀라는,나는 참 연약한 인간임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물이 급하게 흘러가도 고요하고 꽃잎이 떨어져도 조용한 마음의 주인도 있다던데 나는 참 작은 냄비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한 계기이기도 했었다.

법화경에 이런 대목이 있다.

‘쇠녹은 쇠에서 생긴 것이지만 차차 쇠를 먹어 버린다.마찬가지로 그 사람 마음에서 생긴 잘못이 그 사람 자신을 먹어버린다.’

우리는 마음 한번 잘못씀으로써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어제의 뉴스에서도 보고 오늘의 뉴스에서도 보고 내일의 뉴스에서도 볼 것이다.또한 드물게나마 마음 한번 바르게 써서 꽃잎은 떨어져도 지지 않는 영원한 꽃 또한 본다.그러니까 인간의 마음에는 독사와 독수리도 살지만 해독초와 펠리칸도 살고 있고 투우도 살지만 투우사도 살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기생한 녹이 쇠를 먹어버리듯이 본래의 청정한 마음이 사욕에 오염되어 버린 데 있다.

현대의 과학과 기술만 해도 그렇다.인간을 위해 발명한 기계와 연마한 기술이 이제는 신의 자리까지도 넘보는 우상이 됐다.하늘나라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를 없는 것이 없는,넘치는 세상으로 바꾸겠다는 구세주의 등장인 셈이다.과학과 기술에도 내면에는 의의와 윤리가 있어왔다.그러나 현대의 살인적 경쟁에 매달려 가다보니 처음의 인간을 위한 의의와 윤리는 사라지고 오직 목적만이 남아서 생태계까지도 파괴시키는 발전으로 오히려 인류가 불안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하늘이 내린 복을 다 받지 말라’는 말이 있다.새 세기를 맞는 과학인과 기술인은 누가 먼저 내놓느냐는 경쟁에서 한걸음씩 물러나 처음의 마음,곧 인간을 위한,인류의 미래를 위한 의의와 윤리를 다시 챙겨야 할 것이다.삼라만상은 우리의 두뇌조직이 얽혀 있듯이 아주 복잡하게 ‘마음’들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그러기에 오늘 우리 앞에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새가 노래하는 그런 내 밖의 마음과 내 안의 산과 나무와 새가 함께 어우러지는 겸허한 마음이 하나될 때 우주만유는 비로소 안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 나에 의해 자아와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 한정되어 버린 데 있다.곧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최선이고 자신의 가족만이 우선이며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만이 절대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마음이 서로 단절되어 인류가 동맥경화 현상을 맞고 있는 것이다.

새 아침에 우선 당신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라.

돈을 나뭇잎처럼 보시오

감투를 물거품처럼 보시오

세상이 좋다는 것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어떤 불행도 그를 보지 못할 것이오.

<글:정채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