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버리고 가자]마이클 브린/'부패濁流' 막자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한 무리의 기자들에게 에워싸인 채 검찰청사 입구로 막 들어서는 비리혐의의 사업가 혹은 공무원들 사진. ‘한국―20세기를 끝으로 멸종된 것들’이라는 타임캡슐에 묻혀서 ‘영면’에 들어가야 할 대상 중 하나다.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부패와의 전쟁’을 치러왔다. 한국의 일간지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한건 이상 부정부패와 관련된 기사가 실린다. 지금도 ‘모피게이트’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한국인들은 깨끗한 사회 건설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에 대한 ‘결실’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20세기를 살아온 성인 한국인들이 21세기를 꾸려나갈 자신의 자식세대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GNP가 높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믿으며 살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부패를 몰아내고 건전한 사회이념을 다시 세울 수 있다.

▼정치권력 법에 우선▼

후진국의 경우 부패는 생계를 위한 필요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한국에서 아직도 부패가 존재하는 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좀더 ‘풍족’해지기 위한 욕심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패가 법의 견제를 받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정치권력이 법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진정으로 독립돼 있지 못한 사회에서 정치권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해 나간다.‘20세기 세대’는 인생의 목표를 위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와 어떻게 해서든 인간관계를 구축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구조적인 변화없이 벌이는 부패추방운동은 본래의 순수한 의도가 퇴색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법과 법 집행이 진정으로 정치권력에서 독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인 김영삼 정부의 부패추방운동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부패추방운동은 사회 각 분야에 일시적으로 불어닥치는 정치적인 ‘바람’으로 비치고 말았다.

김영삼전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중 재벌로부터 일전 한푼 불법적인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이 때 국민은 그가 과거 받았던 돈에 대해서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그처럼 면죄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혹은 ‘일상적인’ 관행으로 여겨지던 법의 왜곡, 탈세, 불법적 정치헌금 등으로 수사 대상이 되고 검찰청사 앞에 모여든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모욕’을 당해야만 했다.

▼사법부 독립 급선무▼

정치헌금을 비롯한 모든 금융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과거에 행한 범죄에는 면죄부를 주는 대신 오늘부터 일어나는 새로운 범죄는 단호히 처벌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인의 대다수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도덕심이 강하다. 그러나 권력과 돈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돌듯 반복되는 부패척결운동 때문에 한국민들은 어디까지가 용납될 수 있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분별력이 없는 상태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법의 해석과 판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독립되어야만 한다. 또 법원의 최종판결 이전에는 누구도 무죄라는 원칙과 태도를 양성해야만 한다. 법체계가 원칙대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준다면 수사관들에게 양팔을 잡힌 채 검찰청사로 들어서는 혐의자들의 광경은 더 이상 연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광경들은 공정하고 독립적인 법체계를 갖고 있는 사회,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는 사회와는 동떨어진 이미지다.

마이클 브린(전 미국 워싱턴 타임스지 서울 특파원·현 메리트 버슨 마스텔러 부사장)

《다음회 필자는 국회의원 이성재씨(국민회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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