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이슬람 과학은 찬란했다

  • 입력 2001년 10월 17일 18시 49분


알코올 알칼리 알케미(연금술) 알제브라(대수학) 알고리즘(연산법).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된 영어 낱말들이다. 이슬람 과학, 즉 중세에 아라비아어를 학문 용어로 해 전개된 과학이 서구의 현대 과학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이슬람 과학이 인류에 남긴 최고의 선물은 아무래도 아라비아 숫자인 것 같다. 가령 1825를 중세 유럽에서처럼 로마식으로 MDCCCXXV로 표기해야 한다면 오죽이나 불편하겠는가.

▼최고 업적은 아라비아 숫자▼

622년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후 100여년 만에 이슬람교도들은 파죽지세로 시리아 이집트 스페인을 점령해 유럽이 암흑 속에 쇠락하던 바로 그 시기에 서쪽은 스페인의 피레네산맥, 동쪽은 중국의 국경선에 이르는 이슬람 제국을 건설했다. 코란과 칼을 양손에 든 이슬람은 정복한 땅에서 미친 듯이 과학의 진수를 긁어모았다. 특히 칼리프(이슬람 국가의 임금)들이 앞장섰다. 예컨대 749년 바그다드에 수립된 아바스 왕조의 제7대 군주인 알 마문은 828년경 지혜의 집으로 불리는 연구소를 세우고 과학문화의 진흥에 전력을 경주했다.

도서관과 천문대를 갖춘 지혜의 집에서는 그리스어로 쓰여진 과학도서를 아라비아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대규모로 진행됐다. 히포크라테스 프톨레마이오스 유클리드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저서가 모두 번역됐다. 요컨대 그리스 학문이 씨앗이 되고 페르시아나 인도의 과학이 가미돼 이른바 이슬람 과학이 형성된 것이다.

이슬람 과학은 수학 연금술 물리학에서 세계적인 학자들을 배출했다. 이슬람 수학의 대표적인 성과는 대수학의 발달이다. 그리스와 인도 학문의 기초 위에 대수학을 건설한 위대한 수학자는 알 크와리즈미이다. 그가 820년경 펴낸 수학책 이름에 들어 있는 ‘알 자브르’라는 아라비아 낱말이 오늘날 알제브라가 됐으며 그의 이름에서 알고리즘이란 영어 단어가 생겨났다.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특정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모든 조작이 단계별로 명시된 기계적 절차를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아라비아 연금술의 창시자는 유럽에서 게베르로 불리는 9세기경 신비주의자인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다. 연금술의 목표는 비금속으로 귀금속을 만드는 것이다. 자비르는 금속은 유황의 남성적 원리와 수은의 여성적 원리의 상호 작용에 의해 형성되고, 비금속은 죽음과 소생의 과정을 거쳐 귀한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알코올은 연금술에서 엘릭시르(연금약액) 다음으로 소중히 여긴다. 엘릭시르 역시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그만큼 아라비아의 연금술은 훗날 화학의 태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 과학에서 물리학자는 드물지만 세계의 물리학사에 길이 남을 학자가 한명 있었다. 광학 연구에 업적을 남긴 알하젠이다. 인간의 눈을 광학적으로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은 눈에서 빛이 발사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알하젠은 광선이 물체 자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의 연구가 서구에 전해졌을 때 눈의 구조에 관한 라틴어가 없을 정도로 앞선 것이었다.

이슬람 과학의 중심지는 이라크의 바그다드, 이집트의 카이로,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였으며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까지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중국의 당나라와 접촉해 종이 제조법을 이어받아 서방세계에 전했다. 751년 이슬람에 최초의 제지 공장이 건설되고 제지술은 1150년경 당시 이슬람 국가이던 스페인으로 건네졌다.

이슬람 세계는 중국과 유럽을 잇는 중개자 역할뿐만 아니라 그리스 유산을 보존 및 발전시켜 유럽에 되돌려 준 징검다리 구실을 했다. 그리스 유산을 중세 말기의 서구에 전해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이슬람 제국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슬람이 초창기에 그리스를 본받은 것처럼 유럽이 이슬람을 스승으로 삼았던 것이다.

▼탈레반, 첨단무기에 속수무책▼

미국은 동시다발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응징하기 위해 첨단무기로 아프가니스탄을 맹공하고 있다. 지하드(성전)를 부르짖는 이슬람 전사들은 일방적 공격 앞에 속수무책인 탈레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는지 모르겠다.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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