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칼럼]강우현/문화산업「월드컵 特需」기회

  • 입력 1999년 6월 14일 19시 21분


영국 디자인회사가 국제축구연맹(FIFA) 으로부터 100만달러를 받고 디자인했다는 2002년 월드컵 공식 엠블럼이 발표됐다. 캐릭터(마스코트)도 곧 선보일 것이라 한다. FIFA는 앞으로 이들 디자인적 소프트웨어에 대한 배타적 권리로 막대한 휘장사업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주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경기장이나 관광지 등 하드웨어를 빌려주고 입장료와 임대료로 얼마를 받게 될 것이다.

월드컵을 처음 유치했을 때 온 나라가 들떴던 문화산업 파급 효과는 이미 물 건너 가고 있는 것 같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상징이 주최국 디자이너에 의해 디자인된 관례에 미루어 본다면, 현재 침묵하는 한일 양국 디자이너들은 자존심에 대단한 상처를 입었음에 틀림없다. 공식 발표 전에 유출하면 70만달러를 지불한다는 각서를 쓰는 수모를 겪으며 얼굴을 내민 엠블럼은 동양적 정서를 철저히 무시한 흔적이 엿보인다. 유럽과는 다른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과 일본에 관한 자료수집을 단 이틀 만에 끝낸 디자인은 동양인의 대중적 감성을 충분히 농락하고도 남는다. 청색은 한국, 적색은 일본의 상징이라는 식이다. 사실 KOREA―JAPAN이라는 문자를 빼면 영국에서 주최하는 월드컵이라 할 만하다.

우리 문화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FIFA는 한일 양국 디자이너들이 세기적인 이벤트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와 자존심을 동시에 누르고,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탄생할 세계적 문화산업 브랜드의 뿌리까지 잘라버리고 말았다.

휘장과 캐릭터를 만든 디자이너에 의해 수많은 오리지널이 개발되고, 그것이 다시 영상과 애니메이션, 각종 팬시 생활용품, 수준 높은 국가 문화상품 등으로 파급될 수 있었는데 그 실마리가 사라져 버렸다. 결국 주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하드웨어만 잠시 빌려주고 경기에 흥분만 하다가 일시적인 국민화합을 이룬 채 허탈해 할지도 모른다. 선수와 관광객이 메뚜기떼 지나가듯 모두 떠난 뒤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월드컵을 유치했을 때 온 나라가 환영하고 들떴던 이유는 문화산업 파급효과 때문이었다. 10여년 전 올림픽을 치른 우리로서는 ‘우리도 큰손님을 맞을 수 있다’는 ‘집들이’ 차원에서 벗어나 월드컵 이후의 문화 산업시대에의 적응력을 키우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문화산업의 부가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21세기에 걸맞은 지원책과 자생력을 갖춘다면 늦지는 않았다. 우리는 월드컵 주최국이므로 반드시 월드컵 상징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다운 정서를 상품화해 세계인에게 팔 권리가 있다. 우리만이 독창적이고 경쟁력있는 고유의 디자인 문화상품을 팔 자격이 있다.

들뜬 마음으로 찾아오는 관광객은 이미지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다. 기분을 먹을 사람들이다. 우리만의 이미지를 세계인의 취향에 맞게 다시 다듬고 재포장하는 것은 디자인의 매력이다. 지금부터라도 한국의 월드컵 이미지 상품을 만들어 일본에 팔고 외국 관광객에게도 거침없이 팔 수 있어야 한다. 공식 휘장을 넣지 않았더라도 ‘우리다운 것’으로 충분하다. 이는 손님맞이에만 급급한 행정편의적 준비상황을 재점검해 오늘의 생활주변에서 우리만이 갖고 있는 동양적 정서를 상품화하는 일, 공식 상징 개발에서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흑자 월드컵을 치를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강우현 (그래픽디자이너·문화환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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