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백형찬]심봤다, 뮌슈의 브람스 음반!

  • 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1번 음반을 구하려고 서울 중구 회현지하상가를 찾았다. 시내 매장에는 다른 지휘자의 곡은 많았으나 번스타인이 지휘한 곡은 없어 혹시 이곳에는 있을까 하는 기대로 찾아간 것이다.

젊었을 때는 모차르트 곡이 꽤나 좋았다. 밝고 경쾌한 리듬이 좋았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베토벤 곡의 웅장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웅을 비롯한 운명 전원 합창 등의 교향곡을 꽤나 모았다. 이제 쉰을 넘긴 나이에 어렵다는 말러의 곡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말러의 곡은 심오한 인생을 말해주는 듯하다.

회현지하상가에는 적지 않은 중고 음반가게가 있다. 오래된 팝송 LP반부터 시작해서 최신 클래식 CD까지 수두룩하다. 시내 가게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희귀 음반도 이곳에선 종종 찾을 수 있어 음악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지하상가의 한 가게 앞에 어떤 노인이 작은 앉은뱅이 의자에 앉은 채 등을 잔뜩 구부리고는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너무나 열심히 찾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다가갔다. 클래식 CD가 가득 들어 있는 박스에 머리를 거의 넣다시피 하여 찾고 있었다. 박스는 무려 일곱 개나 되었다. 음반들이 마구 섞여 있어 시간을 갖고 정성껏 살펴보지 않으면 찾고자 하는 음반이 절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바닥에 주저앉아 차분히 봐야만 찾을 수 있다. 이곳의 묘한 법칙이다.

나는 엉덩이를 하늘로 향한 채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열심히 찾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찾았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마니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산삼을 만났을 때 내는 소리인 “심봤다!”와 정말 똑같았다.

그 노인이 높이 치켜든 손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적 지휘자인 뮌슈의 음반이 있었다. 뮌슈가 생애 마지막 해인 1968년 파리관현악단을 데리고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지휘한 음반이다. EMI가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것으로, 100년 동안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최고의 곡을 담은 것이었다. 뮌슈가 이뤄낸 예술혼의 결정체이며 그의 고고한 인간 정신이 담긴 명음반이었다.

노인은 이 음반을 찾으려고 무려 3개월을 다녔다고 한다. 이날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지금도 어린애마냥 기뻐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귀한 음반이 종종 발견되는 까닭은 방송국 클래식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근무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민을 간다고 집에 있는 음반을 몽땅 들고 나오기도 하고, 외국인들이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소장한 음반을 몽땅 처분하려고 갖고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가게 주인이 직접 외국에 나가 중고 음반가게를 뒤져가며 최고의 클래식 음반들을 사들여 오기도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명음반을 찾을 수 있고, 음질이 뛰어나다는 프로모션용도 만날 수 있다.

나는 모든 박스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끝내 말러의 교향곡 1번은 찾질 못했다. 아무래도 저 노인처럼 3개월은 정성껏 찾아다녀야 할 것 같다. 대신 귀한 첼로 음반 하나를 구했다. 이미 고인이 된 로스트로포비치의 7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EMI 프랑스가 제작한 것이다.

1957∼1977년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주옥같은 곡을 엄선한 음반인데 바흐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첼로 명곡이 다 담겼다. 첼로를 공부하는 딸아이에게 줄 요량으로 샀다. 물론 이 음반도 시중에선 쉽게 구할 수 없다. 중고 음반가게에 한 번쯤 들러보자. 그렇게 찾고자 했던 귀한 음반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으리라.

백형찬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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