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윤중강]판소리 살리기 ‘비빔밥 전략’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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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와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는 ‘2007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공연’이 지난달 10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올해로 22년째가 되는 완창 판소리 공연은 ‘귀 명창’이 한 달에 한 번씩 맞는 즐거운 휴가와 같다. 거기 모인 청중은 판소리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하나가 된다.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객석에서 추임새를 함께 넣다가 다음 공연에서는 호형호제(呼兄呼弟)하기도 한다. 다른 공연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휴식시간에 주전부리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마치 소풍 온 느낌이랄까. 김밥과 식혜, 삶은 계란과 사이다가 소리판과 어찌나 궁합이 잘 맞는지.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판소리를 멀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들을 위해 뭘 해야 할까? 무조건 ‘판소리는 좋은 것이여’라고 외칠 순 없다. 그들을 위해서 판소리영화와 판소리뮤지컬을 선물하면 어떨까. 영화와 뮤지컬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인기가 높고 국경을 넘어서 많은 사람에게 친하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에겐 판소리가 영화로 만들어져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 영화 ‘서편제’(1993년)는 당시의 최고 흥행작이었다. 이 영화의 속편에 해당하는 ‘천년학’(임권택 감독)이 4월 중 개봉된다니 반갑다. 이제는 아이를 가진 여인으로 성장한 오정해가 스크린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14년 전 대학생이던 그의 연기와 소리가 농익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땅에는 아날로그의 극치인 ‘완창’ 판소리도 있어야겠지만 디지털 환경을 잘 활용한 ‘뮤지컬’ 판소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판소리는 뮤지컬과 만나서 상생(相生)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엔 판소리가 ‘적절하게’ 들어가야 한다. 일반 관객을 위한 노래와 춤 등 볼거리를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 이런 형태로 ‘창극’도 있다. 하지만 창극이 판소리적인 발성에 전적으로 기댄다면 뮤지컬은 자유롭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판소리의 고유한 선율과 장단이 충분히 살아있다면 굳이 판소리적인 발성을 고집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따져 보면 우리가 서양의 클래식을 즐기지만 그 노래를 모두 이탈리아식 벨칸토 창법으로 부르는 건 아니다. 클래식을 팝뮤직처럼, 트로트를 클래식 발성으로 불렀을 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는 쏠쏠하지 않은가!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섞는 것’에 익숙하다. 비빔밥이야말로 이런 융합의 결정체가 아닌가. 우리 민족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 조각보라는 예술품도 만들었다. 지난 세기에 무척 세분됐던 학문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학제 간 융합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학자들은 통섭(統攝)이란 개념을 가져와서 학문의 대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21세기 문화 현상의 특징인 퓨전(fusion) 혹은 하이브리드(hybrid)와 관련이 있다.

판소리를 중심에 두고 고금아속(古今雅俗)을 아우르며 펼치는 판소리뮤지컬! 로맨스와 판타지가 적절히 비벼져 있는 판소리영화!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예술이야말로 ‘극과 극’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예술을 통해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완창 판소리가 서구식 극장에서 공연하지만 더욱더 전통적인 감상 방식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세기의 판소리 공연과는 다른 방식으로 판소리 공연 혹은 판소리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터미네이터와 맞대결하는 21세기판 적벽가는 어떨까. 판소리를 통해서 ‘전(前)근대’와 ‘탈(脫)근대’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면 청중은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판소리는 지금 창조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윤중강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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