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원기]연극과 영화가 더불어 사는 길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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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 두 편을 봤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친구들의 공연이다. 한 친구는 TV 드라마와 영화를 하느라, 또 한 친구는 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느라 그동안 무대 연기를 못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그들의 연기는 역시 ‘진국’이었다.

지난해 말에 ‘대박’을 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주인공인 신인배우의 ‘어쩔 수 없는 연기’ 때문에 분통이 터졌다. “저 배우가 제대로 연기를 했다면 흥행뿐 아니라 작품성도 뛰어난 영화가 됐을 텐데….” 다행히 그 영화에는 대학로에서 연기를 갈고닦은 여러 배우가 조연으로 나와 그나마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만한 30, 40대 배우들을 찾으려면 경기 남양주종합촬영소로 가라는 말이 생긴 지 오래다. 영화계의 호황으로 많은 연극배우가 영화에 출연했다. 무릇 배우란 표현매체를 가릴 이유가 없기에 잘된 일이고 좋은 일이다. 문제는 한 번 영화나 TV로 흡수된 배우들이 제자리인 연극무대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입(출연료)의 격차는 물론이고 그보다는 연습 및 공연 기간 내내 몸과 마음, 시간을 다 바쳐야 하는 연극무대의 근본적 한계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연극계의 제작 방식 때문이다.

무대 배우들이 다른 매체로 넘어간 예는 많다. 1950, 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 때는 악극 연극배우들이 ‘영화배우’가 되었고 1960, 70년대 TV 방송국 개국 때도 많은 연극배우가 TV 탤런트가 되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지금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영국 출신 배우들이 새바람을 일으키며 스타로 떠오른다고 한다. 영국 출신 배우란 바로 셰익스피어 연극배우가 아닌가?

연극은 뮤지컬, 영화, TV 드라마 같은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반이다. 그런데 그 연극무대와 연극배우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너무도 형편없고 미약하다. 무대에 서 본 배우와 못 서 본 배우는 뭐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배우를 볼 줄 알고 ‘배우술(연기)’을 아는 연출 감독의 드라마와 영화는 흥행과 감동을 넘어선 명작이 된다. 연예기획사에서 적당히 돈을 발라 만들어 낸 깜짝 스타들과 연극무대에서 기본부터 다져 온 배우들은 차원도 생명력도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배우를 ‘영화배우’ ‘TV 탤런트’ ‘연극배우’로 구분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영화배우와 연극배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연기 잘하는 배우와 연기 못하는 배우가 있는 것이다. 연극배우 하면 ‘가난’, 영화배우 하면 ‘찬란’이라고 못 박아 버리는 통념도 어리석다. 대중과 흥행을 앞세우는 영화판과, 마니아 관객과 작품성이 먼저인 연극판의 경제 규모가 다를 뿐이다.

연극배우의 위상을 높이려면 온 국민이 알고 추앙하는 연극배우가 나온 후 영화, TV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척척 잘해 내면 된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연기의 뿌리는 연극이라고 알리고 팬들을 무대의 관객으로 모실 수 있으면 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는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초연은 기원전 430년경이었다. 연극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의 역사. 극작술과 배우술은 인문 인간학의 꼭짓점이다.

연극은 배우예술로 생성 및 번성하는 모든 매체의 ‘종갓집’이다. 한 집안이 잘되려면 종갓집이 튼실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종갓집 기둥뿌리만 뽑아 가지 말고 때맞춰 들러서 제사도 같이 올리고 음복도 나눠야 한다. 그러다가 간혹 그 종갓집 무대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미래의 대배우’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극과 영화가 더불어 사는 이치는 이렇게 간단하다.

홍원기 극작가·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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