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강병기]중국의 ‘샹그릴라 공작’

  • 입력 2005년 1월 24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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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 성 북부지역의 샹그릴라(香格里拉)와 리장(麗江), 그리고 다리(大理) 등지를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샹그릴라는 윈난 성의 성도 쿤밍(昆明)에서 서북쪽으로 600km, 비행기로 50분 정도 거리다. 해발 3300m의 고산지대여서 기후는 최고 25.1도, 최저 영하 27.4도이고 일교차도 격심하다.

쿤밍에서 새벽에 떠날 예정이었지만 샹그릴라 공항에 눈이 내린 탓에 6시간이나 쿤밍 공항에 묶였다. 점심 제공도 없이 기다리게 하고 출발시간을 알린 것은 출발 45분 전. 우리에겐 상식 이하이나 백두산 쪽을 다녀온 경험자에 의하면 중국 여행에서 이 정도는 예사라고 한다. 관광산업을 할 생각이 있는지 묻고 싶고 실망도 컸다.

샹그릴라! 이 이름은 불로장수의 신비경을 표현하는 말로 무릉도원을 암시하는 가상의 장소를 뜻한다. 본래 중국어도 아니다. 이곳은 본시 중뎬(中甸)이었으나 2001년 12월 17일 중국 정부는 ‘샹그릴라’로 개칭한다고 내외에 공포했다. 전문가와 학자들의 9개월여의 고증과 연구를 통해 중뎬이 바로 1933년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등장하는 ‘샹그릴라’와 가장 근사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란다.

6500m급 설산을 배경 삼은 울창한 원시림, 맑고 깊고 바다처럼 넓은 호소들, 유유히 거니는 야생동물과 형형색색의 꽃들, 강렬한 태양 아래 금빛 찬란한 라마사원에서 온몸을 던져 기도하는 사람들과 은은히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 화려한 복장의 티베트인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의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원시적 삶. 이렇게 한 지역 내에서 펼쳐지는 기후, 동식물, 종족과 문화의 다양성과 신기함, 원시성은 에덴동산 같은 인류의 원풍경을 연상케 하는 지역이라고 소개돼 있다.

그러나 6시간의 기다림 끝에 도착한 샹그릴라는 겨울 탓인지 찬바람에 먼지가 휘날리는 을씨년스럽기만 한 개척지의 풍경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샹그릴라가 실재하느냐, 실재한다면 어디인가 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티베트를 비롯해 미얀마, 태국 등에도 힐튼이 묘사한 내용과 흡사한 풍광의 지역이 있으니 자기네야말로 샹그릴라라고 칭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던 차에 중국이 재빨리 샹그릴라를 선점하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내 것’이라고 먼저 침부터 발라 놓는 처사나 다름없는 전광석화의 민첩함이다. 만만디의 나라로 표현되는 사회주의 중국 정부의 이 발 빠른 상업자본주의적 처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젊은 학생 시절의 힐튼이 습작한 공상소설을 실재하는 현실로 착각하지 말라고도 한다. 그러나 관광이란 본래 환상과 환각이 허용되고 그러한 비일상적 체험을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허구를 가상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문명의 불모지인 이곳 히말라야 산록의 원시적 아름다움과 소박함이 서린 공간에 환상의 콘텐츠를 접목해 내는 공작에 성공한 것이다. 엄청난 관광자원을 개발한 것이나 다름없다.

‘용사마’ 열풍이 불고 남이섬과 춘천에 일본 아줌마들이 밀려들어도 닭갈비 외에는 팔 것이 없다는 한국의 관광문화정책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샹그릴라’는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강병기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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