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사종/미술품 구입이 투기?

  • 입력 2002년 7월 19일 18시 14분


최근 미술품 유통과 관련한 특별한 경험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먼저 미술애호가이자 수집가인 가까운 지인의 소장품을 전문가와 함께 감정하러 간 적이 있는데 놀라운 것은 ‘작품은 진품이 틀림없는데 구매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감정 결과였다. 미술관 설립이 꿈인 이 지인은 오랫동안 믿을 만한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왔는데 가격 산정방식에 객관적인 잣대가 없어 중개자를 신뢰하고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잘 아는 벤처기업인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구입했다는 조선시대의 청화백자가 감정 후 중국산으로 밝혀진 경우다.

▼자금조사로 미술시장 위축▼

이 두 경우 모두 우리나라 미술품 유통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가까이서 지켜본 두 미술품 수집가들의 상심을 어찌 말로 다 옮겨놓을 수 있을까. 아무튼 나의 가까운 지인과 벤처기업인의 미술품 소장 노력은 이 일을 기화로 고개 숙일 것이 분명했다.

우리나라 미술품 시장의 침체가 가속화된 이면에는 이러한 전근대적 유통체제가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들을 통해 더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 놀라운 사실은 수집가들에 대한 행정당국의 따가운 눈초리와 세간의 몰이해라는 점이다. 세무당국과 세상에서는 고가 미술품의 소장을 ‘투기’와 ‘사치’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더 많다는 주장인데 결국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음성적 거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술품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경매시장이 차츰 활성화되고 있는 근래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많은 선의의 수집가들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한 투기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위험을 안고 경매시장의 문턱을 조심스럽게 넘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실 미술품에 대한 투자와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자를 같은 시각으로 본다는 것부터 문제가 많다.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자 동기가 단기적이며 오로지 돈만을 중시한다면, 미술품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이면서도 미적 체험을 더 중시하는 패턴을 지닌다. 실제로 미술품 시장에 들어온 자금이 투기 목적으로 환수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모 그룹의 창업자가 평생 수집한 고가의 미술품을 미술관을 지어 사회에 환원한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자산으로 적립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즉 문예부흥도 바로 이같이 패트런이라 불리는 돈 많은 귀족 수집가들의 문화적 취향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메디치 가문의 미술품 수집과 애호열기 덕분에 결국 오늘날에도 피렌체의 어린이들은 온 거리에서 예술작품과 맞닥뜨리는 미적 체험을 하며 자라고,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과 세련된 안목을 키운다. 보티첼리, 지오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예술가의 탄생도 미술시장의 존립을 주도하는 귀족 수집가들과 이에 손뼉을 치고 환호하는 안목 높은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패션, 건축, 사진, 산업디자인 등 오늘날 이탈리아가 문화산업 분야에서 창출해내는 천문학적 부가가치의 밑바탕을 이룬 것은 바로 이 같은 미술품 수집가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가 컸다.

세계의 문화 선진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 미술품 시장의 성립은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우리 미술시장은 소장가의 부족, 상업화랑 중심의 유통체계, 호당 가격제 등 불합리한 가격 산정방식, 공신력 있는 감정기구의 부재 등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로 인해 침체가 심화되어 왔다. 다행히 이 같은 미술품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적 제도로 미술품 공개 경매시장이 등장해 수집가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경매제도도 시장 활성화의 전제가 되어야 할 행정적 차원의 신원보장시스템 부재와 투기로 바라보는 질시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한 험로가 예상된다.

▼콜렉터가 박수받는 사회를▼

법에 의해 보장된 신원보장제도가 없는 한 시장 활력의 동인이 될 건강한 경매시장으로의 흡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매회사에 이따금 걸려오는 세무당국의 자금출처 조사를 위한 신원확인 요구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겨우 배양되고 있는 우리의 미술시장을 위축시킨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미술품 소장가들을 향해 손뼉을 치는 사회 분위기 조성과 시중의 자금을 미술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행정적 지원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건강한 미술시장의 육성이야말로 문화국가로서의 장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홍사종 숙명여대 교수·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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