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개혁고삐 바짝 조여라

  • 입력 1998년 9월 18일 19시 28분


꼭 90년 전인 1908년에 캐나다 출생의 영국인 기자 프레드릭 매킨지는 ‘코리아의 비극’이라는 책에서 “조선이 개혁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을 지극히 사랑했던 그는 뒷날 ‘자유를 위한 코리아의 투쟁’이란 책을 통해 3·1운동을 서방세계에 널리 소개하면서 조선이 개혁에 실패함으로써 망국의 비운을 겪어야 했던 데 대해 다시 한번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 매킨지의 90년전 경고 ▼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오늘날 한반도의 내부 상황을 보면서 매킨지의 경고를 새삼스레 되씹게 된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질적인 차이는 있으나 사회 전반에 걸쳐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남쪽의 경우에는 쇠락, 북쪽의 경우에는 붕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남쪽을 보자. 부패와 타락이 사회의 많은 부문들에 만연되어 있음을 우리는 매일같이 확인하며 생활한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사이의 정경유착을 보여주는 수많은 리스트, 당적 변경에 돈 거래가 개입되어 있다는 풍설, 고위 관리들의 수뢰 등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더욱 놀라운 것은 ‘국세청을 동원한 대통령선거자금 모금사건’이다. 앞으로 사직당국이 엄정히 조사한다면 진상이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이제까지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국가기강을 뒤흔든 중대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궤를 같이 하는, 우려할 만한 사태가 사법적 사안에 대한 정치적 결정이다. 정치적 타산이나 거래에 따라 구속과 불구속, 기소와 불기소가 영향받고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신하면 법원의 형량이 달라진다고 국민은 믿게 되었다. 이것은 법의 지배를 뼈대로 삼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다른 한편으로, 돈이라면 아들이 부모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의 손가락도 절단할 정도로 타락한 사회로 전락했다. 이러한 남쪽 사회의 현실은 마키아벨리의 ‘부패국가론’ 또는 ‘타락국가론’을 연상시킨다. 지배층과 민중 모두가 부패하고 타락함으로써 국가적 소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암담한 상황의 16세기 이탈리아를 그는 그렇게 이름붙이고 개탄했던 것이다.

▼ 국가와 국민 살리는 길 ▼

이어 북쪽을 보자. 식량위기로 압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위기는 북한 사회 나름의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왔다고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배층이 누리는 특권과 권력남용, 그리고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를 연결하는 뇌물수수의 만연 등이 국가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는 뜻이다.

마키아벨리는 ‘부패국가’의 활로를 ‘훌륭한 군주’에게서 찾고자 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선 오늘날의 시점에서 우리가 ‘훌륭한 지도자’에게서 활로를 찾을 수는 없다. 우리의 활로는 당연히 개혁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지도자’를 강조하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개혁이 너무나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조차 개혁이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출범 반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그 기대는 흔들리고 있다.

어느 정권이나 초기일수록 힘이 붙고 따라서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게 마련이건만 개혁의 성과보다는 구습의 반복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정권의 힘이 빠르게 빠져 개혁은 실종되고 말 것이 아닌가 국민은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보도된 최장집(崔章集)고려대교수의 개혁촉구는 값지다고 하겠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정치학자의 공개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권 내부로부터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실기(失機)한다’는 경적이 울린 것이다.

▼ 기득권층이 앞장서야 ▼

개혁은 한문으로 改革이라고 쓴다. 改는 자기(己)에게 회초리()를 든다는 뜻의 합성어다. 그것도 가죽(革)회초리다. 이것은 개혁이란 자기에 대해, 자기 가족에 대해, 자기 세력에 대해 가죽 회초리를 들어 가차없이 때리는 행위임을 뜻한다. 바꿔 말해 집권층 그리고 기득권층이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집권층은 물론 야권의 기득권층도 역사의식을 갖고 지금부터라도 개혁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이 제도적 차원에서나 국민 개개인의 행태적 차원에서 20세기가 끝나기에 앞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위기의 심연에 우리는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김학준<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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