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진현]통일 ‘내가 맘먹을 탓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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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정상회담 뒤 신문방송사장단 대거 방북
그때 김정일 스스로 한 약속, 단 하나도 이행하지 않았다
北은 ‘남한 접수’ 공작 중인데 소위 진보멘토, 북에 손짓하는 한 김정은의 주민폭압 계속될 것… 이 나라 주류는 목숨 걸어야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통일시기 언제쯤? “그건 내가 맘먹을 탓입니다. 적절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런 표현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2000년 8월 12일 세 시간 반에 걸친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관저인 목란관에서 나눈 대화를 기록한 비망록의 한 구절이다. 그해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 이후 첫 공식 작품이 대한민국 신문방송사장단 56명의 8월 5∼12일 방북이었다. 귀국 직후 바로 8·12 티타임과 점심 헤드테이블에 앉았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나를 포함한 복수의 사장단만이 모여 각자 또는 함께 들은 말을 취합해 정리했다.

이 비망록은 통일, 미사일, 노동당규약개정, 서울답방, 직항로, 경의선, 이산가족, 범민련과 한총련, 미일 수교 등 28개항 22페이지에 달한다. 오만한 성격 표현 중엔 이런 것도 있다. “미사일 문제는 내가 만든 것입니다. …미국이 골머리 아프겠지. 우리한테 돈 주기는 싫고 과학자 연구는 막아야겠고… 내가 무엇 때문에 큰 나라들 찾아다니나요. 내가 평양에 앉아있어도 여러 열강에서 나를 찾아오지요.”

그의 생각의 핵심은 이것이다.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옵니다. 외국과의 관계에서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다른 나라와 친해도 군력은 가져야 합니다.”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을 때 이미 핵이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푸틴의 평양 방문은 7월 19∼20일, 우리 방북 2주 전이다. 시기로 보아 핵폭탄이라는 뜻보다는 고농축우라늄(HEU) 획득으로 해석된다. 푸틴이 17년 전 김정일의 핵 발언을 새삼 터뜨린 의도는 아직도 북핵에 쩔쩔매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조롱일 것이다.

되돌아 놀라운 사실은 28항에 달하는 언급, 약속 또는 우리에게 부탁한 것 중 단 한 가지도 이행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진실로 경악할 만한 사기꾼이다. 이런 사기.

“남쪽 신문을 일본 통해 돌아서 읽을 필요 없습니다.(2, 3일 걸린다 했다) 우리 서로가 같은 민족인데… 판문점 연락사무소로 매일 신문 넣어주십시오. 그냥 주기 어려우면 사장이 본 뒤에 손때 묻은 것 보내 주세요.”

서울로 돌아오자 각자 자기신문 서로 많이 보내려는 경쟁의 촌극도 벌이고 유엔군의 허가, 공동수집·배송비용 배분 등을 서둘러 마치고 북측에 연락하니 계속 답신이 없었다. 김정일의 직접 부탁이라고 아우성치고서야 20일쯤 뒤 받기 시작. 그러나 딱 사흘 만에 아무 말 없이 끊어버렸다. 남측 논설위원 초청해 달라고 하니 “남북 언론 간 합의문 만들었는데 무슨 초청이 필요합니까… 오고 싶으면 언제나 오라고 하십시오.”

7박 8일간 여정은 철두철미 공작이었다. 특히 마지막 날 정하철 선전선동부장의 저녁은 테이블마다 술 강권 담당자가 있었고 뒷방에 숨어서 지령하는 총지휘자가 따로 있었다. 여기에 걸려 남측 인사들의 만취 실수, 끝내 피까지 보고….

북한은 인류 역사에서 있어본 적 없는 ‘기적’의 나라다. 70여 년을 계속 사기와 거짓으로 쌓아올린 유사종교집단이고 2차 세계대전 후 이 지구상 최장 3대 부자 세습 왕국이다. 제3세계 국가 중 서울 도쿄 베이징은 물론 워싱턴 모스크바 런던까지 핵폭탄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일한 1인 독재국가다. 우리 방북단의 실제 체험이나 남쪽 친북단체들의 자생적 공작적 반국가·반체제운동, 국회까지 진출한 종북정당,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촛불 중 일부 반미 요소들을 통찰하면 북이 남을 먹겠다는 공작과 정략을 멈출 리가 없다. 대한민국이 일관된 북한의 교란작전에 휘말리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한미, 한일 간 교란, 한중 간 대결 유도 전략도 지속될 것이다.

우리 쪽 이른바 진보 지성 멘토들이 ‘남북 민중’이 힘을 합쳐 ‘남북 기득권’ 반(反)통일세력을 몰아내자며 김 씨 왕조에 손짓하는 한 주민 폭압의 ‘기적’은 지속될 것이다. 국민도 시민도 민중도 백성도 없는 북에게 남쪽 민중과 힘을 합치자는 반(反)진실 허구이론이 대한민국을 흔드는 한 김 씨 가문의 기적은 계속될 것이다.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김정은을 넘는 자강, 대한민국의 자강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이 나라 주류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역사창조의 도전임을 깨쳐야만 대한민국은 부활한다.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통일#김정일#북한 교란작전#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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