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낙연/리덩후이와 리콴유

  • 입력 1999년 10월 27일 19시 14분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교수는 대만과 싱가포르를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다.

“대만의 민주주의는 리덩후이(李登輝)가 죽어도 계속되겠지만 리콴유(李光耀)의 정치체제는 그가 죽으면 무덤에 함께 묻힐 것이다.”

어떻게 이런 비교를 시도했을까. 아마도 헌팅턴은 오늘의 대만과 싱가포르를 만드는 데 두 지도자가 절대적이었다는 공통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차이점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1923년생으로 김대중대통령과도 동갑내기인 두 지도자의 책을 읽었다. 리덩후이 총통의 ‘대만의 주장’(일본 PHP연구소)과 리콴유 전총리의 ‘리콴유 자서전’(문학사상사)이다.

‘리콴유 자서전’에는 그가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를 어떻게 이루었던가에 대한시사가담겨있다.

그는 1959년 싱가포르 자치령 총리로 첫 취임했다. 그와 각료들은 부인도 동반하지 않고 간소하게 취임식을 치렀다. 그래도 장관들의 사무실에는 일제히 냉방장치를 했다. 후텁지근한 기후에 방해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취임 직후 리콴유 정부는 도심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해변의 쓰레기를 줍고 공터의 잡초를 뽑는 시민 캠페인을 시작했다. 며칠 뒤 리콴유 스스로도 빗자루를 들고 거리청소에 나섰다.

‘대만의 주장’에는 교과서 개혁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나는 부총통 시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 전부를 읽고 아연했다. 국어 교과서에는 외국의 위대한 인물 이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는 국제적 시야를 가진 국민이 태어날 리가 없다. 산수 교과서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다가 갑자기 수준이 높아진다.”

대만의 어려운 외교에 대해서도 리덩후이는 분명하고 현실적인 철학을 갖고 있다.

“정식 외교관계가 제일 좋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면 경제관계 중심의 실리적 관계로도 유효하다. 그것마저 어렵다면 문화적 교류도 좋다. 각국의 키맨(핵심인물)과 두터운 파이프를 갖고 그 나라 정부와 사회를 움직인다. 이것을 나는 무실(務實)외교라고 불러왔다.”

리덩후이는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난다. 그의 마지막 꿈은 무엇일까.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중에 3대 개혁(의회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을 이루고 총통에서 물러나고 싶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기가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나의 노력은 이 아름다운 대만에 남아 한없는 발전을 계속할 것이다. 이것도 나에게는 ‘대만에 태어난 행복’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 출신의 리콴유. 일본 대만 미국의 4개 대학에서 농경제학을 전공한 리덩후이. 그러나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그들의 학식만이 아니다. 식견과 경험에 바탕한 철학과 목표, 그것을 이루려는 전략과 정열, 그리고 그들의 끝없는 애국심이 우리를 압도한다. 동남아의 작은 섬 싱가포르와 대만을 오늘에 이르게 만든 힘도 그것이었으리라.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얄팍한 정치기술부터 배울 일이 아니다. 당면한 국가적 과제를 하나라도 정확히 파악하고 목표를 가져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듣기 좋은 말이나 하는 사람들로는 나라가 설 수 없다.

청와대의 많은 비서들이 총선출마를 준비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대만과 싱가포르를 다시 생각한다. 대통령에게 철학과 목표와 정열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을 콩밭에 빼앗긴 비서들에게 국정이 제대로 보일 것인가.

이낙연<국제부장>naky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