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청소부 노인과 만리장성

  • 입력 1997년 1월 28일 20시 25분


교대 전철역에서였다. 통로를 따라 붐비는 사람들에 밀려 나오다 보니 바닥 여기저기에 먼지덩이들이 보였다. 지하를 흐르는 퀴퀴한 공기와 사람들의 발길에 차인 주먹만한 먼지덩이들이 유유히 지하 바닥을 굴러 다니는 것이었다. 지하계단을 오를 때였다. 한 노인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계단과 벽의 틈사이에 숨은 먼지덩이들을 꼼꼼하게 끄집어내고 있었다. 육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스포츠형으로 깎은 단정한 백발에 환경미화원이 입는 회색조끼를 입고 있었다. 어딘가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모습에서 정년퇴직 후 환경미화원으로 새출발한 노인 같았다. 그는 빗자루를 피해 도망다니는 먼지덩이들이 선로위로 도망가지 못하게 살그머니 다가가서 손으로 잡아 쓰레기통 속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집어넣는 것이었다. 몇해전 일본 도쿄 길거리에서 본 광경이다. 중년의 인부 한 사람이 인도와 차도의 경계석사이의 이음새에 시멘트를 바르고 있었다. 그는 손에 한줌의 시멘트가루를 집어 이음새에 골고루 뿌리고는 손가락 굵기의 구부러진 쇠막대기로 다지는 행동을 지겨울 정도로 꼼꼼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정성으로 붙여진 경계석은 백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은 정말 남이 보지 않는 사이에 조그만 자기일에 정성을 다 쏟고 있는 것이었다. 3년전 새벽에 인도의 뭄바이 공항에서였다. 인도인 특유의 온몸을 감싸는 옷에 머리까지 싸맨 중년의 인도여인이 빗자루를 들고 공항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쥔 빗자루는 이름만 간신히 빗자루라고 붙일 수 있을 뿐 몇올 남지 않은 허술한 것이었다. 쓰레받기도 없이 그녀는 이쪽 먼지를 저쪽에 옮기는 식으로 무성의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형식만 있지 내용은 실종된 행동이었다. 우주에서도 내려다보인다는 만리장성은 40억개의 돌덩이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런 만리장성을 누구나 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라도 정성껏 돌 한 개는 가져다 놓을 수 있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 그 나라는 반석 위에 서는 것이다. 엄 상 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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