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삼풍’서 딸 잃고 마음 닫은 엄마 배움의 문 열고 세상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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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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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주부학교 졸업생 대표 임애영 씨(가운데)가 20일 학교 강당에서 열린 졸업식 예행연습에서 고별사를 낭독하고 있다. 양원주부학교 제공
양원주부학교 졸업생 대표 임애영 씨(가운데)가 20일 학교 강당에서 열린 졸업식 예행연습에서 고별사를 낭독하고 있다. 양원주부학교 제공
뉴스를 보다 그대로 넋을 잃었다. 깨어난 뒤엔 정신없이 아이를 찾았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전해숙 씨(55)는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날. 1995년 6월 29일. 그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전 씨의 상실감은 더 컸다. 당시 중3이던 딸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참사를 당했다.

딸아이는 아빠 생일 선물을 마련하겠다고 백화점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그날 오전, 딸아이는 여느 때처럼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전 씨는 딸아이를 가슴에 묻어야 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할까. 전 씨는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마음의 창을 닫았다. 혹여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성당에만 다녔다.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 다친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성당에서 몸이 아픈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했다. 제대로 돕고 싶었다. 굳게 닫힌 마음의 창이 열리기 시작한 게 이즈음. 눈이 녹듯 아픔도 녹았다.

봉사활동 자격증을 따려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 학력만으론 자격증을 딸 조건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양원주부학교에 입학했다. 오랜만에 시작한 공부는 낯설었다. 영어, 수학이 특히 힘들었다. 동료 학생들이 곁에 있기에, 선생님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조금씩 배움의 기쁨을 알아갔다.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오래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발표도 했다.

올해 딸아이의 17번째 기일은 챙기지 못했다. 기일마다 딸과 자주 갔었던 곳을 찾았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도서관에서 고입 검정고시 준비에 매진했다. 아이도 응원해줄 것이라 믿었다.

합격통지서를 받은 4월의 어느 날, 아이의 사진을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전 씨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엄마의 등을 밀어 주는 딸의 손길을 느꼈다. 그렇게 딸의 온기를 받으며 학교로 가는 지하철 계단을 매일 올랐다. 작지만 큰 결실. 전 씨는 만학도 주부 158명과 함께 이달 24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양원주부학교는 6·25전쟁으로 인해 남한으로 피란 온 사람들의 자녀, 전쟁고아, 극빈 아동 등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1953년 설립된 일성고등공민학교의 후신이다. 올해까지 4만896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삼풍붕괴#양원주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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