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지명관/8·15를 맞는 심정

  • 입력 1997년 8월 12일 20시 38분


모레가 해방 52주년의 광복절이다. 8.15를 어떤 심정으로 맞는가 하는 것은 해방 후의 역사를 어떻게 보며 오늘의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과 맞물린다고 할 수 있다. 8.15처럼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 체험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사이에는 느낌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에 대한 공감대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축제와 반성의 날 ▼ 반세기 전 더할 수 없는 축제의 날이었던 8.15가 오늘에 와서는 뼈아픈 반성의 날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 땅에서 그날을 맞이하고 조국의 허리가 美蘇(미소)양국에 의해 분단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고아의 신세가 된 것처럼 느꼈다. 서울이 있는 남쪽 땅은 어버이처럼 삶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고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와 호흡을 함께하는 열려 있는 광장이라고 생각됐다. 왜 그렇게도 남쪽 땅을 이상화(理想化)했을까. 북쪽에서 잔인한 탄압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남쪽에 대한 동경은 부풀어 올랐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심리로 월남한 그날부터 맛보아야 했던 좌절과 환멸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후 50여년의 인생이란 정말로 환멸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니까 하는 말이지만 월남초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영화관에는 경관이 나와 앉아 장내 「질서」를 잡는다는 일제 때 습성이 남아있을 무렵이었다. 애국지사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바로 그 고문경관이 조선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입석경관이 어둠속에서 『저 경관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듯 아팠겠는가』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소리에 반항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찾아온 남녘 땅인가 하고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가다듬기 어려웠다. 그날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 북으로 간 사람들, 남으로 온 사람들, 북에 남은 사람들, 남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각기 다른 운명을 머리에 떠올리며 「역사란 무엇인가」하고 묻고 싶어진다. 오늘처럼 북에서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굶주림에 허덕이고, 남에서는 음식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그 부(富)와 권력을 나누려고 여념이 없다고 한다면 몇번이고 그 물음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북으로 간 사람들 중에는 저 극장의 그 고함소리에 소스라쳐 북녘길을 택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북쪽 땅에서 공산독재를 이를 악물고 증오하면서도 월남하면 아는 사람 한 사람 없이 어떻게 알몸으로 살아가느냐고 망설이다가 북에 남은 사람도 수없이 많을 것이 아닌가. ▼ 남북 「환희의 날」은 언제 ▼ 그러나 지금 남에 사는 우리는 승리자, 어떤 의미에서 분단의 비극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행운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렇게 고함을 지르던 경관도 이 행운아의 대열에 참가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가혹하다. 개인이 지닌 마음의 선악과는 관계없이 어떤 사람은 승리자의 대열에 세우고 어떤 사람은 패배자의 구렁으로 몰아넣는 것같다. 그런 운명이 바로 종이 한 장 차이의 우연으로 결정되는 듯싶다. 우리도 세계사는 심판정이라는 말을 믿고 많은 것을 비판하고 비난해 왔다. 그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또 한편 역사는 약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라는 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맞는 8.15광복에 대한 우리 민족의 공감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날이 다시금 우리 모두의 환희의 날이 되기에는 아직도 먼 것 같지만….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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