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공대 교수님 인생 강의에 공학도들 ‘삶’을 돌아보다

  • 입력 2009년 10월 6일 06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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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허성관 교수 강좌
‘인간과 화술’ 9년째 인기
“인생의 깊이 가르치고파”

“제 나이 스물여덟. 부모님이 힘들게 모은 재산이 욕심나기도 했습니다. 이 수업을 듣고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이기심과 욕망이 있겠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태도가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대구대 공대의 한 강좌 수강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강좌는 허성관 교수(62·자동차산업기계공학부)가 2000년 ‘인생’을 주제로 개설한 교양과목. 과목 이름은 ‘인간과 화술’이지만 실제 내용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공대에서 개설한 교양과목이 9년 넘도록 장수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강생도 700여 명이어서 9개 반으로 나눠야 할 정도.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단과대 학생도 적잖이 수업에 참여한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일 오전 수업에도 200여 명이 참여하는 강의실에는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허 교수는 화학강화유리제조기술 등 20건의 특허를 가지고 있고 산업안전 등에 관해 총 35권의 책을 썼다. 책 중에는 ‘인생론’ ‘인간관계론’ ‘화술과 인간관계’ ‘경제성공학’ ‘리더십’ 같은 제목의 얼핏 ‘비공학적’으로 보이는 책이 여러 권이다. 이 가운데 ‘인생론’은 이 과목의 교재로 쓰인다. 책의 상당 부분은 고교생 때부터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일기 형식의 글이 차지하고 있다. 남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부터 돌아보는 내용이다.

그가 공학도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학 공부만으로는 인생을 잘살 수 없다’는 신념 때문.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만 해도 삶에 대한 성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끼리 인간관계가 나쁘면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지고 생산성도 떨어진다”며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삶의 이런 측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업의 성패는 결국 학생들의 만족 여부. 수강생들은 “살아가는 데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반응이다. 이희정 씨(21·여·멀티미디어공학과 2학년)는 “이 수업을 들으면서 이전에는 없던 삶의 고민이 생겼다”며 “졸업 후 내가 어떤 현실과 마주할지 알 수 없지만 대학생으로서, 공학도로서 삶을 고민하며 자신을 채워 가면 훗날 당당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장승호 씨(24·컴퓨터IT공학부 2학년)는 “그저 전공 공부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내기 쉬운데 이런 수업 덕분에 나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어 유익하다”며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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