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지구촌 뒤덮는 ‘21세기 新아편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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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떠난 아프간, 양귀비 천지… 세계마약 기지창 역할

아프가니스탄에 일부 잔류한 미군이 양귀비 밭을 걸어가며 주변을 정찰하고 있다. 올해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은 한 해에 두 번 수확할 수 있는 슈퍼 양귀비 품종을 경작하고 있어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 이미지
아프가니스탄에 일부 잔류한 미군이 양귀비 밭을 걸어가며 주변을 정찰하고 있다. 올해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은 한 해에 두 번 수확할 수 있는 슈퍼 양귀비 품종을 경작하고 있어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 이미지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8)의 탈옥으로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그의 탈옥 이후 교도소 독방에서 외부로 연결된 길이 1.5km 땅굴이 발견됐다. 이곳이 탈출로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은 그의 마약 카르텔이 1990년대 이후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하에 정교한 지하 터널을 뚫어놓고 마약을 밀매한 사실을 떠올리며 적색 경보를 울리고 있다.

구스만은 세계 23개국 이상의 범죄 조직과 내통해 왔다. 각국은 요즘 그가 손을 뻗었던 세계 마약 시장을 특별히 주시하며 악의 고리를 끊겠다는 태세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곳이다. 미군이 군사력을 빼면서 양귀비 거래가 크게 번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간의 마약 밀매 조직은 막대한 물량을 갖고 가격까지 조절하고 있어 ‘마약 세계의 OPEC(석유수출국기구)’로 불릴 정도다.

여기에다 동유럽이 마약 유통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올랐고, 인터넷 암시장이 생활공간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국제 마약 시장이 점점 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북한 마약의 통로였던 중국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놓은 상태다.

마약의 OPEC로 부상한 아프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지난달 내놓은 ‘2015년 세계마약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간의 양귀비 재배지는 2240km²로, 제주도 면적보다 크다. 지난해 아프간의 재배 면적이 크게 확대되는 바람에 세계 양귀비 재배 면적도 1930년대 이후 최고점을 찍었다. 양귀비는 아편과 헤로인의 원료다. 아편은 양귀비 열매의 유액(乳液)을 말린 것이다. 헤로인은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 비싸게 팔 수 있는 마약이다. 이 둘은 아프간 농가의 가장 큰 수입원이 됐다.

아프간 농지는 올해 봄에도 온통 분홍빛, 붉은 꽃으로 물들었다. 그야말로 양귀비 일색(一色)이었다. 지난해 이곳의 아편 생산량은 6400t.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15년 전만 해도 아프간의 생산량은 세계의 70%였다.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의 존 솝코 특별감사관은 “탈레반과 양귀비의 나라인 이곳의 경제는 마약에 중독됐다”고 말했다.

‘죽음의 꽃밭’을 둔 아프간에서 미국은 2001년부터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해왔다. 하나는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편과의 전쟁이다. 하지만 탈레반도 아편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둘 다 활개를 쳤다.

미국은 지금까지 아프간 아편 생산 퇴치 프로그램에 84억 달러(약 9조1425억 원)를 쏟아부었다. 미국이 유난히 아프간 양귀비의 씨를 말리고자 했던 것은 아편이 탈레반의 주요 자금줄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이곳의 마약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미국은 아편 퇴치 프로그램을 통해 양귀비를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밀, 과일이나 값비싼 향신료인 사프란을 심으라고 유도했지만 농민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칸다하르의 자리 지역의 농민 압둘 바끼 씨는 AP통신에 “양귀비 재배가 불법인 줄 알지만, 내 자식들에게 공기밖에는 먹일 게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양귀비는 수확 기간이 5개월로 한 해 두 번 수확할 수 있고 다른 작물보다 훨씬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지 농민들은 “올해는 수확 기간이 더 짧고 가뭄에 강한 새로운 양귀비 품종을 심었다”며 수익이 더 늘 것으로 기대했다.

미군 철수는 아편 퇴치 정책에 치명타를 날렸다. 미군이 떠나자 농지 통제권이 점차 탈레반 수중으로 들어간 것. AP통신은 “탈레반과 연계된 마약 거래상들이 가난한 농민들에게 양귀비 씨앗을 나눠 준다. 탈레반은 농민들에게 양귀비를 경작하지 않아도 양귀비를 경작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대한 세금을 무조건 내라고 협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방 언론은 “테러 단체들이 마약의 공급과 가격을 동시에 통제하는 OPEC와 같은 조직으로 급부상했다”고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요즘에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중앙아시아 언론매체 아시아플러스에 따르면, IS는 아프간의 마약산업 주도권을 놓고 탈레반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오마르 네사르 아프간현대화연구소 국장은 “올해 IS가 아프간 마약 이익의 30∼35%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금력 약화를 걱정하는 탈레반이 IS와 대규모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프간 마약은 파키스탄과 이란, 터키 등을 거쳐 유럽으로 유입된다.

한편 동유럽은 최근 코카인 임시 저장소로 떠올랐다. UNODC 보고서는 “코카인 수요가 유럽과 북미에서 줄어 지난해에는 1980년대 이후 최소 거래량을 기록했다”며 “벨라루스, 몰도바,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코카인 밀수 루트이자 밀수입 지역이 됐다”고 분석했다. 멕시코 마약왕 구스만이 다량으로 밀매한 코카인은 종전까지 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를 거쳐 서유럽으로 밀수됐다. 그렇지만 최근 동유럽이 수요가 폭발하면서 밀수 루트도 동진(東進)을 한 것이다.

공산당 간부까지 물들어 마약전쟁 선포

아시아도 비상이다. UNODC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압수된 마약 규모는 2008년에서 2013년 사이 4배로 증가했다.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에서 압수된 필로폰 양은 2008년 11t이었지만 2013년에는 42t으로 4배 가까이로 늘었다.

특히 아프간 마약은 중국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 아프간 양귀비로 만든 헤로인은 이란-파키스탄-아프간 접경인 ‘황금 초승달 지역’에서 중국을 넘보고 있다. 중국이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한 것을 반기며 두 손을 놓고 있으면 담장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까지 중국은 태국-미얀마-라오스 접경지대인 ‘황금 삼각지’에서 강력한 마약 단속을 벌여 왔지만 헤로인과 필로폰을 근절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도 이 지대와 맞닿아 있는 중국 윈난(雲南) 성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황금 삼각지와 연결된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의 트렁크를 개조하거나 오토바이에 숨겨 마약을 들여오는 밀수꾼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과 인접한 중국 지린(吉林) 성은 요즘 ‘마약 택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린 성 창춘(長春) 시 공안국은 올해 초 택배를 이용한 마약 밀매 첩보를 입수하고 시내 10여 개 택배회사 사무실을 수색했다. 그 결과 헤로인 200g과 필로폰 30g, 흥분제 180정이 들어 있는 소포를 압수했다. 지린 성 공안청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지린 성에서 적발된 1kg 이하 마약사건의 절반 이상이 택배를 마약 운반 및 판매 수단으로 이용했다. 택배는 단속이 어렵고 적발돼도 검거 확률이 낮아 마약 밀매의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국경을 틀어막아도 마약을 근절하기 어렵다. 필로폰과 같은 합성 마약이 자국 내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광둥 성 루펑(陸풍) 시의 한 공장에서는 합성 마약 2.9t이 적발됐다. 이 지역에서는 올해 1월에도 2.4t의 마약이 압수됐다. UNDOC는 “중국이 주요 합성 마약품의 생산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난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은 지난달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또 마약상황보고서도 처음으로 발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마약 퇴치는 국가 안보와 민족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며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병사를 거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마약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마약 사범은 1400만 명에 이른다. 인구 100명당 1명꼴이다. 과거 마약 복용자는 주로 실업자, 자영업자, 농민이었던 반면 지금은 대기업 직원, 연예인, 공무원들이다.

중국에서는 50g 이상의 마약을 사거나 팔면 사형에 처해지지만 마약 사범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공산당 고위 간부까지 마약에 취해 적발되기도 한다. 올 4월 후난(湖南) 성 린샹(臨湘) 시의 궁웨이궈(공衛國) 시장은 마약에 취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 한다”고 신고했다가 구속됐다. 이달 초에는 광둥 성의 한 노래방에서 지방 관리 등 남녀 9명이 함께 마약을 투여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노래방으로 위장한 이 마약 복용 장소의 운영자는 지방의 고위 간부였다. 홍콩 배우 청룽(成龍)의 아들은 마약 혐의로 6개월 동안 수감됐다가 올 2월 석방됐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마약류 사범 16만 명을 구속하고 69t의 마약류를 압수했다.

새로운 복병, 인터넷 암시장

인터넷 암시장은 새로운 복병이다. 암시장 사이트 중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개인 간 폐쇄형 P2P 네트워크인 ‘다크넷’이다. 이곳은 인터넷주소(IP주소)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아 마약류뿐만 아니라 위조지폐, 위조서류, 총기, 탄약, 폭발물, 인체 장기 거래, 살인 청부 등 온갖 불법의 온상이 됐다.

글로벌 보안업체인 트렌드마이크로가 2년 동안 다크넷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거래된 물품은 대마초로 32%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신경안정제, 엑스터시, LSD 등 환각제가 뒤를 이었다. 다크넷 이용자들이 많이 쓰는 언어는 영어와 러시아어였다. 다크넷에 대해 UNDOC는 “기술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접근성도 놀라울 정도로 높아져 마약 거래의 요새가 점점 이곳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공안부는 올해 4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마약 거래를 집중 단속해 832개 사이트에서 마약 밀매자 3만2871명을 체포하고 마약 3.3t을 압수했다.

한국 당국도 올해 상반기에 인터넷을 이용한 마약류 사범 599명을 붙잡았다. 지난해보다 165% 증가한 규모다. 송병일 경찰청 형사과장은 “기존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익명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마약류 사범이 인터넷으로 몰려든다”며 “이 때문에 마약 단속에 적발되는 회사원과 학생의 비중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항구나 공항에서 적발되는 마약도 크게 늘었다. 인천공항세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인천공항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3666kg(시가 256억 원 상당)으로 2001년 개항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마약을 땅콩버터에 섞거나 치약으로 위장하는 등 밀수 수법도 다양해졌다.

올해 한국에서 적발된 마약 중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생산된 식물성 마약인 ‘카트’가 3.6t으로 가장 많다. 국제 마약 밀수 조직이 마약 청정국으로 알려진 한국을 경유지로 정하고 미국으로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것이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아편#마약왕#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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