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2부]<2> 분노와 과속 실험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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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화내는 분노男, 시내서 시속 104km 과속하다 결국 ‘쾅’

여성보단 남성이, 중년보다는 청년층에서 과속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하고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쪽이 상대적으로 과속운전을 일삼는다는 이야기다. 과학적 근거는 있을까?

이를 풀어보기 위해 동아일보 소심남과 열혈남 기자가 실험에 나섰다.

입사 5년차인 이은택 기자(30)는 화나는 일이 있어도 밖으로 분출하기보단 조용히 삭인다. 3, 4년 후배들에게도 말을 놓지 못해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쓴다고 선배에게 혼났지만 여전히 말 놓기가 어렵다.

입사 4년차인 김성규 기자(29)는 사건팀과 법조팀을 거치면서 온갖 범죄와 사건 속에서 살아왔다. 후배들이 잘못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누가 과속을 일삼을 가능성이 큰지 판단해줄 실험은 도로교통공단 류준범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공단 실험실에서 진행됐다.

○ 스트레스 받아도 살아남으려면…

먼저 운전자의 분노 정도를 측정하는 설문조사를 했다. 운전 중에 일어날 수 있는 31개 상황에서 얼마나 화가 나는지를 체크했다. 예를 들어 ‘교통흐름에 맞지 않게 서행하는 차를 보면?’이란 질문에 ‘화가 전혀 안 난다’(1점)에서부터 ‘화가 아주 많이 난다’(5점)까지 5단계로 측정했다. 155점 만점에 이 기자는 77점, 김 기자는 106점이 나왔다. 김 기자가 이 기자보다 더 쉽게 분노한다는 의미다.

설문조사를 마치고 실제 승용차와 대형 스크린으로 구성된 시뮬레이터에 탔다. 컴퓨터로 설계된 주행 코스에는 △차도로 끼어드는 자전거 △통학버스 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어린이 등 7가지 위험 상황이 포함됐다. 제한속도는 시속 60km로 설정됐다.

먼저 이 기자가 시동을 걸고 좌우를 한참 살피다 차로에 진입했다. 시속 40∼50km 사이. 인도를 걷는 행인, 반대편에서 오는 차,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가 보였다. 이들이 갑자기 차로로 끼어들 수 있단 생각에 긴장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느낌. 그때 자전거가 차로로 확 들어왔다. 브레이크를 밟고 완전히 정지. ‘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또 나타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계속 긴장했다. 멀리서 중앙선 부근에 뭔가 보였다. 얼른 속도를 줄이자 ‘공사 중’ 표지판이 보였다. 이를 피해 중앙선을 넘으려는 반대 차로의 차들도 보였다. 깜짝 놀라며 1차로에서 2차로로 차로를 바꿨다. 방금 본 차들이 중앙선을 넘어 지나갔다. 과속했다면 정면충돌할 뻔한 상황. 가슴을 쓸어내렸다.

○ 분노하는 운전자는 과속한다

이어 시동을 건 김 기자. 거침없이 차로에 진입했다. 시속 55∼60km 사이. 자전거 도로를 달리던 자전거가 갑자기 차로로 들어왔다. 속도를 살짝 줄이고 재빨리 핸들을 꺾었을 뿐 정차하지는 않았다. 화난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 조금 더 달렸다. 시속 70km를 훌쩍 넘었다. 교차로에 접근하자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었다. 가속페달을 확 밟았다. 빨간불에서 아슬아슬하게 교차로를 통과했다.

김 기자는 실험 뒤 이 상황에 대해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이 있으니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성격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시속 80∼90km를 오가며 제한 속도를 넘었지만 다른 차들을 추월하는 데만 집중하는지 속도계는 보질 않았다. 그때 중앙선 부근 공사구간이 나타났다. 그래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살짝 피하려던 순간 반대 차로에서 공사구간을 피해 중앙선을 넘어오는 과속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과속 대 과속이 빚은 대형 사고. 지켜보던 공단 관계자들은 “최소 전치 4주”라고 했다.

김 기자의 최고속도는 시속 104.8km였다. 시내를 경부고속도로에서처럼 달린 셈이다. 스쿨존(제한속도 시속 30km)에서도 시속 57km까지 밟았다.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 운전 중에는 인식하질 못했고 실험 뒤에야 다소 놀라는 반응이었다. 반면 이 기자의 최고속도는 시속 65.4km. 류 연구원은 “소심하게 운전하는 사람일수록 ‘내가 혹시 과속했나’ 의심하며 속도계를 자주 본다”며 “분노 상태에선 무의식적으로 과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공단이 2004년 22∼50세 남성 운전자 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도로 소통이 원활할 때 분노 수준이 높은 운전자들의 평균속도는 시속 80.42km였다. 반면 분노 수준이 낮은 운전자들은 시속 67.68km였다. 쉽게 분노하는 운전자들이 약 시속 13km나 더 빨랐다. ‘쉽게 분노하면 과속한다’는 속설이 수치로 입증됐다.

○ 운전자 심리치료 도입해야

선진국은 운전자 교육에 심리치료를 병행 중이다. 미국에선 이미 1994년 ‘운전자 분노척도’가 개발됐다. 상습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단속에 적발되는 운전자들에겐 교통사건 전담 법원에서 심리치료를 명령한다. 독일과 일본도 운전자 교육에 의학-심리학적 검사를 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수석연구원(심리학 박사)은 “선진국에서는 전문가가 진단한 뒤 심리치료가 필요한 운전자들을 모아 소집단 대화나 토의식 교육을 하거나 장기 관찰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실제 적용되진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습 과속운전자 교육에 선진국처럼 심리상담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운전교육 시 분노척도 분석 등을 통해 이들에게 심리상담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택·김성규 기자 nabi@donga.com  
공동기획: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한국교통연구원 한국도로공사 손해보험협회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채널A 영상] ‘난폭운전 VS 양보운전’ 손익계산서 살펴보니…
▼ 분노하면 근육 경직되고 시야 좁아져 ▼

■ 인체에 어떤 영향 미치나… 다른 차 정상적 차로변경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

분노는 ‘뇌에 달린 방아쇠’다. 시작되면 여러 가지 호르몬이 분비되고 주의력 집중에서부터 근육경직까지 온몸에 연쇄적인 변화를 몰고 와 결국 과속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은 카테콜아민 노르아드레날린 등이다. 모두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공통점이 있다. 분노감이 생기면 이 호르몬들이 부신수질이나 뇌신경 등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 결과 혈액 흐름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진다. 시야각이 좁아져 인식할 수 있는 눈앞의 상황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몸의 균형이 깨지는 셈이다.

쉽게 분노하는 사람은 외부의 사소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확대해석하는 경향도 보인다. 다른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차로를 변경했을 뿐인데도 분노성향 운전자는 이를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추월이나 경적, 욕설 등으로 응징해야 ‘정의가 실현됐다’고 만족하는 경향을 보인다.

분노성향 운전자들은 화가 난 원인이 운전 전에 있었던 일이든, 운전 중에 생긴 분노이든 운전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고 한다. 과속과 난폭운전을 하며 만족감을 느끼고 흥분했던 교감신경을 진정시킨다. 그에 반해 보통 사람들은 운동이나 여가활동을 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등의 행동으로 분노를 해소한다.

전문가들은 심리치료를 통해 분노 운전자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표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 유범희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이런 경우 장기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며 “분노지수가 높은 운전자들은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노를 낮추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분노#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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