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10>쓰레기 무단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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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버리는 담배꽁초, 뒤차엔 대형사고 부르는 ‘폭탄’

지난해 4월 경기 포천시 영중면의 한 고가도로. 스프레이 페인트 수백 개가 실린 이모 씨(26)의 승합차 짐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펑’ 하는 폭발음이 들리자 이 씨는 급히 차를 갓길에 세우고 몸을 피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차량 전체를 휘감았다. 경찰과 소방서는 당시 다른 차량에서 날아든 담배꽁초가 갑작스러운 화재의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으나 아직도 범인은 잡지 못하고 있다.

그해 3월 서울 성북구 길음동 내부순환도로를 달리던 트럭 짐칸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트럭 짐칸에 실은 종이상자를 모두 태웠고 도로 위로 불붙은 상자들이 나뒹굴었다. 이 사고 역시 주변 차량 운전자가 버린 담배꽁초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운전 중 창밖으로 던져지는 담배꽁초는 달리는 폭탄에 불을 붙이는 성냥과 같은 위협적인 존재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쓰레기도 위험천만이긴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에 떨어진 쓰레기 등으로 인한 사고는 매년 100여 건에 이르고 일반도로까지 더하면 배 이상 증가한다. 경찰과 각 지방자치단체도 집중 단속을 벌이며 차창 밖 담배꽁초와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 위험천만한 창밖 쓰레기 투척

직장인 정모 씨(32)는 지난해 10월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앞차에서 쓰레기가 날아와 순간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종이컵이었지만 시속 80km로 달리는 상황에서 ‘부딪히면 큰일 날 것 같다’라는 직감에 자신도 모르게 급제동을 한 것이다. 뒤 따르던 차는 경적을 울리며 가까스로 정 씨의 차를 피해 지나쳤다. 정 씨는 “다행히 사고는 안 났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차에는 냄새난다며 담뱃재도 털지 않으면서 길에 꽁초를 던지는 사람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지난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한 카페에서 ‘도로 위에서 목격한 꼴불견’을 조사한 결과 ‘창밖 쓰레기 투척’을 꼽은 누리꾼이 가장 많았다. ‘끼어들기’ ‘급제동’ ‘과속’보다도 더 심각한 반칙운전 행태로 꼽힌 것이다. 설문 참여자들은 “기분 나쁜 것은 둘째치더라도 사고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부 비양심 운전자들 때문에 불안해서 운전을 못 하겠다”라고 성토했다.

창밖으로 날린 쓰레기는 뒤차를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한다. 교통안전공단 정관목 연구교수는 “운전 중 쓰레기나 담배꽁초가 앞 유리창을 향해 날아오면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돌리게 된다”라며 “도로 위에 떨어진 쓰레기를 밟고 지나갈 때 튕겨지면 연쇄적으로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의 시야가 좁고 고속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도 떨어지는 탓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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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기’가 만연한 한국의 도로

지난해 12월 21일 새벽 본보 취재팀은 서울 종로구 환경미화원과 함께 도로 위 쓰레기 청소 작업을 했다. 도로는 주변 차량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했던 ‘흉기’로 가득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해 12월 21일 새벽 본보 취재팀은 서울 종로구 환경미화원과 함께 도로 위 쓰레기 청소 작업을 했다. 도로는 주변 차량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했던 ‘흉기’로 가득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처럼 도로 위의 쓰레기는 뒤차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기인데도 매년 막대한 양이 버려진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한국도로공사 동서울지사 갓길청소팀과 함께 고속도로의 운전 중 쓰레기 무단 투기 실태 현장 취재를 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담배꽁초는 물론 만화책과 음식물봉투 등 여러 종류의 쓰레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 갓길로 밀려나 있었지만 바람에 날려 다시 차로 안으로 들어올 경우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갓길청소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로공사 동서울지사가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판교 갈림목(JC)∼퇴계원 나들목(IC) 등 48km 구간에서 수거한 무단 투기 쓰레기는 무려 442t에 달했다. 동서울지사가 관리하는 구간은 48km. km당 10t 정도의 쓰레기가 수거되는 것이다. 고속도로 갓길청소팀이 일일이 손으로 수거하는 쓰레기도 하루 15∼20여 포대다.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전체 고속도로 3632km에서 지난해 수거된 쓰레기는 5016t이며 이를 처리하는 비용만 10억 원이 넘는다.

서울 도심의 도로도 운전 중 버린 쓰레기가 널려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취재팀은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4시 반 종로구 환경미화원과 함께 도로 위 쓰레기 실태 취재에 나섰다. 종로1가 보신각 앞부터 종로2가까지 약 400여 m 남짓한 거리였다.

한 번 빗질에만 수십 개의 담배꽁초가 쓰레기와 함께 쓸려 나왔다. 자동차 바퀴에 눌려 납작해진 담뱃갑은 여러 번 빗질을 해야 쓸려 왔다. 취재팀이 도로 청소를 돕는 2시간 동안 옆을 지나치는 차량에서 불씨가 꺼지지 않은 꽁초가 3번이나 날아왔다. 환경미화원 김해용 씨(53)는 “청소하는 걸 보면서도 창문을 열고 음료수를 쏟아 버리는 운전자도 많다”라고 토로했다.

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처 장경욱 박사는 “운전 중 쓰레기 무단 투기는 남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반칙운전”이라며 “경찰과 지자체의 집중 단속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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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반칙운전#쓰레기#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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