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타고 떠나자]<10>“이 고기를 혼자 먹는 것은 불효”

  • 입력 2009년 4월 23일 15시 30분


'한번 가 봐야지…'

이런 생각을 너무 자주해서 마치 가본 적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장소 중 하나가 보성 녹차 밭이다.

각종 CF, 드라마에서도 자주 봐서 정말 가본 것 같고, 담배 끊듯,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담배 끊기 힘들 듯,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장소, 보성 녹차밭.

녹차 밭에 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차역까지만 가면 그 다음은 알아서 모셔다준다.

대나무 바람 가르는 소리와 "이걸 혼자 먹는 건 불효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한우마을 여행은 덤.

●녹차와 바다

'KTX 보성 녹차 밭, 담양 대나무, 산외 한우마을 기차여행'은 용산 역에서 오전 8시 출발했다.

여행을 떠난 21일은 전날까지 폭우가 내려 생각보다 여행객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축복 받은 소수였다.

오전 10시 20분 KTX 열차가 정읍역에 도착하자 아침까지 꾸물대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 싶게 맑았다. 맑은 뿐 아니라 하늘과 땅을 깨끗한 물로 먼지 하나까지 깔끔하게 씻어내려 1년 중에 며칠 있을까 말까한 청명한 하늘을 뽐냈다.

버스 편으로 다시 2시간 가량을 달려 전남 보성군 회천면 율포 해변에 도착. 녹차 밭으로 유명한 대한다원에 들르기에 앞서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식당은 '토담'.

조미료를 쓰지 않기로 유명해 여러 매체에 맛집으로 소개됐고, KBS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녹차 오곡밥, 녹차 수제비, 녹차 떡국, 녹차 오삼 불고기….

이중 녹차 오삼 불고기(8000원)를 시켜 매운 맛으로 맛있게 배를 채우고 잠시 율포해변에서 바다 바람에 얼굴을 씻은 뒤 녹차 밭으로 향했다.

보성의 대표적인 녹차 밭 '대한다원'은 약 40만 m²(약 12만 평) 넓이의 산에서 녹차를 재배하는 곳.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헤어스타일로 산을 깎아 놓은 모습이랄까, 차나무로 꾸며진 거대한 정원을 거니는 것 자체가 마음을 맑게 한다.

900m 가량 걸어 '바다 전망대'에 오르면 산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이날만큼은 눈앞의 녹차 밭, 그 뒤로 형형색색의 산 넘어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우스개 소리로 알겠지만, 군 복무 시절 "사단장 떴다"며 부대 앞 도로와 정원의 돌들을 물걸레로 닦아본 경험이 있는 남자라면 이날 날씨가 "물걸레로 닦은 것 같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오후 3시경, 녹차 밭을 떠나 20분 가량을 달려 담양군 담양읍 24번 국도를 따라 조성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로 이동.

이 길은 약 8.5㎞로 1970년대 초반 담양군이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은 게 자라 지금의 '가로수 터널'이 됐다.

이중 차량 통행을 금지한 약 1㎞ 구간 초입에 버스는 여행객들을 내려 주고, 끝나는 지점으로 가서 기다린다.


▲동아닷컴 백완종 기자

●"이 고기를 혼자 먹는 것은 불효"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산책을 마치고 오후 5시경 담양 죽녹원에서 대나무 숲을 가르는 바람소리에 귀를 씻는다.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이번 여행의 백미는 이제 시작.

50분 가량을 이동해 도착한 전북 정읍시 산외한우마을은 동네 전체가 정육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고깃집인 이 곳은 전국에서 한우가 가장 싼 곳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이곳에는 정육점이 두 곳이 있었는데, 인근 농가에서 잡은 한우를 600g당 1만 원씩에 팔아 "고기가 싸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손님들이 몰려들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육점을 창업했고 지금은 도로 양쪽에 정육점 70여 곳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산외마을의 특징은 정육점 따로 식당 따로라는 것. 정육점에서 원하는 부위를 구입해 식당으로 가져가면 상을 차려주고 고기를 요리해 준다. 상을 차려주는 대가로 600g당 7000원 정도를 받지만 워낙 고기값이 싸 서울 등 대도시에서 15만 원 정도를 내야 먹을 수 있는 한우를 이곳에서는 3만~4만 원 선에 먹을 수 있다.

맛은 어떨까?

함께 간 동영상 기자가 한 입 고기를 베어 물고 하는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고기를 저 혼자 먹는 것은 불효입니다."

산외 한우마을은 기차여행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한번쯤은 가보는 게 좋다. "불효"라고 하면서도 고기를 사가지 못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칼로 썰어준 고기를 바로 구워 먹는 맛을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들기 때문.

녹차 밭으로 눈을 씻고, 대나무 숲에서 귀를 씻고, 싱싱한 한우로 입이 즐거워지는 여행. 각 여행사에서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으며 이 상품을 운영하는 지구투어의 경우 값은 어른 5만9000원, 어린이 5만8000원. 인터넷(http://www.jigutour.co.kr/domestic/domestic_detail.html?no=1561)으로 예약할 수 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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