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5년 탐험가 난센 지구 최북단 도착

  • 입력 2008년 4월 8일 02시 53분


1895년 4월 8일. 영하의 추위에도 썰매를 끄는 개들의 입에선 뜨거운 숨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빙판 위에서 프리드쇼프 난센과 얄마르 요한센은 나침반과 지도를 꺼내 들었다.

북위 86도 14분. 그들은 그때까지 인간이 도달하지 못했던 지구의 가장 북쪽에 서 있었다.

1861년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에서 태어난 난센은 스키 실력이 뛰어나고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동물학자가 되려던 그의 꿈은 21세에 답사차 바다표범잡이 어선에 타면서 바뀌게 된다.

그린란드의 광활한 만년설을 횡단하겠다는 꿈을 품은 난센은 6년 뒤 동료들과 함께 52일간 썰매를 타고 이 땅을 동서로 가로질렀다.

그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출발해 무조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전략을 택했다. 탐험이 끝난 뒤에는 에스키모들과 함께 지내며 에스키모의 생활방식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도 썼다.

2년 뒤인 1890년 그는 더 위험한 탐험계획을 노르웨이 지리학회에 제출했다. 배를 빙하에 얼어붙게 한 뒤 해류와 빙하의 움직임에 따라 북극을 횡단하겠다는 것.

그는 얼어붙어도 부서지지 않는 배 ‘프람(Fram)호’를 직접 설계했다. 프람은 노르웨이어로 ‘전진’이란 뜻이다.

반대를 물리치고 1893년 6월 프람호는 돛을 올렸고 시베리아 동쪽에서 얼어붙어 북극으로 향했다. 1895년 3월 배에서 내린 난센과 요한센은 한 달간 썰매여행을 계속한 끝에 당시로선 인간이 갈 수 있었던 지구의 최북단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후 서쪽으로 가려다 표류했고 1년간 북극곰과 바다코끼리를 잡아먹으며 연명하다 구조돼 3년 3개월 만에 노르웨이로 돌아오게 된다.

이미 ‘국민 영웅’이 된 난센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동물학과 해양학, 탐험사에 관련된 논문과 연구서를 끊임없이 발간했고, 뛰어난 외교력으로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난센은 1920년 국제연맹의 난민고등판무관으로 임명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억류된 42만 명의 전쟁포로를 송환했다. 또 난민 신분증명서인 ‘난센 여권’을 도입해 러시아 혁명 당시의 난민들을 도왔다.

그는 192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유엔은 그의 인도주의적 업적을 기려 ‘난센상’을 제정했다. 전 분야에 걸친 그의 도전정신은 다음과 같은 말에 녹아 있다.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진실로 바란다면 가장 먼저 용기를 가져야 하며, 공포에 지배당하지 않아야 한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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