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종로구 부암동 「뒷골」

  • 입력 1999년 2월 12일 18시 57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그마한 흙벽집. 오랜 풍상으로 내려 앉은 기와. ‘짹짹’거리는 새울음 소리…. 밭이랑 한 쪽에 볕을 쬐며 늘어졌던 개들이 인기척에 놀라 짖어댄다.

영락없는 강원도 두메산골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 한복판. 경복궁에서 자하문길로 접어들어 꼬불꼬불한 주택가 골목을 15분여 비집고 들어가면 만나는 북악산 자락의 ‘뒷골’이다.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바로 아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종로구 부암동 52. 청와대가 자리잡은 마을 앞 고개 너머의 번화한 ‘앞골’에 비해 반세기는 뒤진 모습이다. 주민이라고는 농가 23채에 사는 50여명이 전부다. 대부분 50대 이상이다. 대개 20∼30년씩 눌러앉아 살고 있고 3,4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도 4가구나 된다.

68년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공비들이 여기까지 들어온 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됐다. 시간이 멈춰 선듯 옛 모습이 그대로 남은 것은 이때문.

“낮엔 마을이 텅 비어요. 남자들은 공사현장에 가고 여자들은 식당 종업원이나 파출부로 일을 찾아 시내로 나가죠.”

뒷골에서 40여년째 살고 있다는 최간웅(崔幹雄·57)씨의 말이다.

최씨는 “요즘엔 나이든 사람들이 소일거리 삼아 채소를 가꾸지만 용돈벌이도 안된다”고 말했다.

시내로 가는 길은 급경사 고개를 타고 넘는 편도 1차선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포장된 지는 10여년 밖에 안됐다. 그 전까진 비 눈에 질척임이 심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20여분 걸어 북악스카이웨이까지 나가야 한다.

상수도도 길 포장후에 가설됐고 이때까지는 북악산 샘물이 주된 식수원이었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깔리면 지척의 시내로 일나갔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뒷골. 북악스카이웨이를 질주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도 계곡안 ‘뒷골’의 정적을 깨진 못한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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