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초대 극지연구소장 김예동 박사

  • 입력 2004년 7월 6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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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극지연구소장 김예동 박사는 “극지 연구는 기초과학은 물론 생물공학 등 다양한 학문이 어우러진 종합과학”이라며 “한국의 많은 과학자들이 남극 세종기지와 북극 다산기지를 방문해 연구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안산=강병기기자
초대 극지연구소장 김예동 박사는 “극지 연구는 기초과학은 물론 생물공학 등 다양한 학문이 어우러진 종합과학”이라며 “한국의 많은 과학자들이 남극 세종기지와 북극 다산기지를 방문해 연구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안산=강병기기자
이달 1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원(KORDI)에서는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KORDI의 여러 연구본부 가운데 하나였던 극지연구본부가 4월 예산 편성과 인사에서 독립적인 극지연구소로 개편돼 뒤늦게 개소식을 가진 것.

“기쁨 반, 아쉬움 반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을 감안하면 늦은 감도 있습니다.”

초대 극지연구소장인 김예동(金禮東·50) 박사는 한국의 극지탐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83년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유학 중 지도교수의 권유로 남극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였다.

“당시 한국인에게 남극은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남극이라고 하면 고작 ‘아문센’ ‘개썰매’ 정도만 연상할 정도였으니까요. 바다얼음 위로 비행기가 착륙한 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그야말로 ‘완전 백색’이었습니다.”

그 1983년은 김 소장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한 해였다. 대한항공(KAL) 007기 격추사고에서 운항기관사였던 형을 잃은 것.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으나 그의 의지를 꺾기는 힘들었다.

“지도교수가 처음 남극을 구경한 제게 ‘경치가 아름답느냐’고 묻더군요. 고개를 끄덕였더니 ‘앞으로 자주 올 것이다’고 말하더군요. 당시 저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남극 탐험은 올해 초까지 이어져 모두 20차례에 이른다. 거의 1년에 한 번씩 남극에 간 셈이다.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방문 횟수다. 20여년 가운데 극지 탐험 등 출장시간이 절반에 이른다.

올해 초의 방문 목적은 ‘탐험’이 아니었다. 지난해 말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숨진 고(故) 전재규 대원의 사후 현장조사 때문이었다. 김 소장은 전 대원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지금까지 남극에 파견된 대원들이 비슷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모두 ‘운이 좋았다’며 넘어가곤 했는데….”

전 대원은 세상에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는 게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의 생각이다. 특히 연구소의 위상이 높아지고 내년부터 남극 탐험의 필수 장비인 쇄빙선의 설계가 시작되는 것도 전 대원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 대원의 여동생 전정아씨(26)는 현재 이 연구소 대외협력팀에서 극지연구의 중요성을 외부에 알리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위험이 많은 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곳이 남극입니다. 그곳이 우리의 실험실이기 때문이죠.”

김 소장에게 남극은 ‘보물창고’다. 처음 갔을 때에는 기후 등을 예측할 수 없는 동토(凍土)에 불과했으나 20여년간의 연구를 통해 남극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최근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 북쪽을 탐사하던 중 메탄가스와 물로 이뤄진 가스 수화물을 발견했습니다. 석유를 대체할 차세대 연료로 꼽히죠. 한국의 연간 가스 소비량의 300년분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남극에서는 자원개발이 금지돼 가스 수화물을 채굴할 수 없으나 앞으로 개발이 시작되면 채굴 권리인 광권(鑛權)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소는 내다보고 있다.

김 소장은 남극 주변 해역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있는 크릴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은 낚시미끼 등으로 쓰이는 수준이지만 식량화하면 경제적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지난해 국내 한 수산회사는 남극 해역에서 약 1만5000t의 크릴을 잡아 180억원의 수입 대체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김 소장의 무대는 남극뿐만이 아니다. 2002년 4월 말 설립된 북극 다산기지도 그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극지 전문가들이 많다. 제안부터 입지 설정, 정부 당국자 설득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김 소장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한국이 무엇 때문에 극지 연구를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김 소장에게 물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죠. 남극은 지구상에서 순수하게 과학연구를 통해 국가적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남극 개발이 이뤄지기 전까지 우린 개발할 수 있는 자원을 부지런히 찾고 기술을 연마할 겁니다.”

안산=차지완기자 cha@donga.com

김예동 소장은

―1954년 서울 출생

―1977년 서울대 지질학과 졸업

―1987년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지구물리학 박사

―2001년 7월∼현재 과학기술부 국가지정연구실 ‘북극 환경·자원연구실’ 연구책임자

―2002년 4월∼현재 국제북극과학위원회(IASC) 한국대표

―2003년 9월∼현재 한국해양연구원(KORDI) 극지연구소장

―2003년 12월∼현재 대한지구물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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