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한솔교육 변재용 사장 "너는 세상을 다가져라"

  • 입력 2001년 8월 16일 18시 48분


외동아들 두성군과의 즐거운 한때
외동아들 두성군과의 즐거운 한때
《‘신기한 나라’ 시리즈로 알려진 유아교육전문회사 (주)한솔교육은 불과 10년 사이 놀라운 성장세를 보인 ‘신기한 회사’다. 91년 매출액 3억원에서 2000년 매출액 2267억원으로 700배 이상 성장했고 7월말에는 업계 최초로 대규모 외자유치에 성공해 다시 화제를 불렀다. 미국의 유수한 투자회사가 지분 11.6%를 액면가의 140.8배인 주당 70만4000원에 사들여 ‘신기한 나라’가 얼마나 알짜기업인지 확인해준 것. 그러나 이 회사의 산실(産室)이 대학 시절 야학을 했던 젊은 운동권출신 부부가 얻은 허름한 지하셋방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신기한 성공신화’의 주인공은 변재용(邊在鎔·45)사장.》

장난감과 캐릭터인형, 그림책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는 서울 마포 한솔교육 본사. 전국회원 40만, 종업원 1만명을 헤아리는 전국조직의 센터다. 사장실은 12층 한 구석. 변사장의 첫인상은 영락없이 마음씨좋은 동네 아저씨다.

75년 서울대 토목공학과에 입학한 뒤 10여년 간 변사장의 젊음은 시대상황에 저당잡혀 있었다. 학생운동, 노동야학, 위장취업,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년 옥살이. 대학 졸업 뒤에도 서울 구로공단, 상계동 등에서 야학을 계속했다. 잠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한 적도 있지만 결혼을 위한 ‘위장취업’이었을 뿐, 초롱한 눈망울들이 기다리는 ‘야학현장’은 그를 좀체 놓아주지 않았다. “천성이 내성적이어서 운동일선보다는 제도교육에서 소외된 어린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꾸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82년 차린 ‘영재수학교육연구회’는 호구지책이었다. 이름만 거창했지 어린이 산수문제지를 만들어 가가호호 방문지도하는 일이었다. 이리저리 융통한 자금 150만원으로 지하셋방에 차렸던 이 연구회가 훗날 한솔교육의 모태다. 예상보다 수입은 쏠쏠했지만 그는 1년 반만에 회사를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가 ‘전업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30대 중반이었던 89년 무렵이었다. “늦게 철들었다고 봐야죠. 선후배들 중 정치로 빠지는 사람도 많았고 사회운동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린이 교육산업으로 제 갈길을 정한 거죠. 크게 봐서 사회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게 내 몫이라고.”

이때도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현장’이었다. “학습지를 들고 서울과 수도권의 유치원을 돌아다니다보니 유아교육 사정이 열악하다는 점과 박봉에도 헌신적인 교사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장 영유아용 교재가 너무 빈약했습니다. 한국의 영유아들 대부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의 교육에서 방치된 상태였던 거죠.”

교재개발에 모든 힘을 쏟았다. 이렇게 해서 2년만에 탄생한 것이 ‘신기한 한글나라’다. ‘ㄱㄴㄷㄹ, 가갸거겨’ 식의 따분한 한글공부를 ‘사과, 사탕’ 등 통문자 학습으로 바꿔버렸고 아이들이 ‘공부’를 ‘놀이’로 인식, 교사와 함께 즐겁게 놀면서 배울 수 있게 했다.

새 교재는 효과가 컸다. 방문교사가 일주일에 한번 15분 간 아기와 함께 ‘놀다’가는 것만으로 6개월 뒤엔 한글을 줄줄 읽는 영유아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났다. 엄마들의 입소문이 홍보전단이 됐다. ‘신기한 나라’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혀도 잘 안돌아가는 세살배기 여자아이가 신문을 읽고나서 “엄마, 청와대가 어디예요?”라고 묻는 TV광고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야학을 할 때나 회사를 경영할 때나 저를 이끈 것은 현장, 그리고 교육의 힘에 대한 꿈이었던 것같습니다. 다만 젊을 때 꿈이 계란에 바위치듯 현실에 부닥쳐 깨지는 무모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현실에 발디딘 실현가능한 꿈으로 바뀐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도 ‘조용한 혁명’을 해나가는 셈입니다.”

한솔교육은 경영방식과 직장문화에도 여러모로 별난 구석이 많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토익점수보다 봉사활동 경력을 중시한다. 2차 면접 때는 평사원들로만 면접관을 구성, 직원이 직원을 뽑게 한다. ‘일을 시킬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할 동료’를 뽑는다는 것. 사회봉사활동을 하지 않고서는 승진도 안된다. 사원들이 돈을 모아 사회복지시설 등에 기부할 경우 그 기부금 액수만큼 회사가 보태주는 ‘매칭 그랜트’(비례보조금) 제도도 시행 중이다.

올초에는 일선교사 등 비정규직 사원 1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이 ‘운동권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업가로서 냉철하게 회사 발전을 위해 판단한 거죠. 교육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만족이고 이를 위해서는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교사들이 안정돼야 합니다.”

7월초 매년 세전이익 1%(첫해분으로 2억원을 냈다)를 공익재단인 아름다운 재단에 출연키로 한 것도 지속적 사회공헌 모델을 고민한 결과다. 아름다운 재단은 이 돈으로 장애여성의 출산과 육아, 장애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신기한 나라 만들기 기금’을 조성했다.

“사실 오래 고민했습니다. 조직원들이 혹 섭섭해하지 않을까 해서…. 아직 사원복지도 제대로 못하는 게 많은데…. 하지만 기업도 사회라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종업원이란 말대신 ‘조직원’이란 표현을 쓴다. 직원들이 수동적으로 품팔고 월급받는 존재가 아니라 회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함께 지닌 존재라는 뜻이다.

전체 조직원의 80%가 여성. 내부 승진에서나 채용에서나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모성보호관련법이 개정되기 오래 전부터 한솔교육의 출산휴가는 90일이었다. IMF 때도 해고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임금이 5% 올랐다. 연구개발비나 교육훈련비는 아끼지 않는다.

경쟁이 심한 기업환경에서 경영자로서의 이해관계와 이런 경영철학이 상충되는 일은 없는지 궁금했다. “저희도 구조조정을 합니다. 회사가 커지면 그에 따라 조직원 역량도 커져야하고 끊임없는 자기혁신이 요구되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도태되는 사람이 생깁니다. 하지만 직원들을 방치하고 있다가 갑자기 구조조정한다며 퇴출해버리는 방식은 아니예요. 회사가 비전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훈련교육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도 회사도 혁신해나가는 게 ‘저희식’ 구조조정입니다.”

이런 그를 조직원들은 믿고 따른다. 한솔교육 한민철 대리의 얘기. “‘그만두고 싶다가도 사장 때문에 계속 다닌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사장과 많이 얘기를 해본 것도 아니고 술한잔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래요. 참 신기하죠?”

두주불사형. ‘회사내에 대적할 사람이 없다더라’는 직원의 얘기를 전하자 “무슨 소리냐, 주량이 ‘하이량’(海量)에 이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가 밝히는 주량은 기분좋은 날, 소주 2병반 정도.

야학시절 만난 서울여대생 박희옥(朴姬玉·45)씨가 대학졸업 직후인 81년 그의 평생동반자가 됐다. 슬하에 아들 하나. “그때만 해도 세상의 온갖 고민은 다 짊어진 것 같았죠. 이 험한 세상에 아이는 왜 낳아 고생시키나하는 생각에 하나만 낳고 끝냈는데, 요즘 와서 그게 참 후회돼요. 직원들에게는 젊을 때 서넛씩 낳으라고 하지요.”

그 외동아들 두성군이 중학생이 되자 그는 “아빠가 번 돈은 아빠가 다 쓰고 가겠다. 네겐 한푼도 남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산은 아이가 부자가 되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유산 믿고 어려움 헤쳐나갈 힘 잃을 것이고 저도 유산을 남겨준다면 아들 인생에 관여하고 싶어질 겁니다. 대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익히게 해주는 게 나의 유산입니다.”

두성군도 고3이던 지난해 “대학에만 가면 독립하겠다”며 “그 비용까지만 도와달라”고 했단다.

가정에서건 회사에서건 그는 지금도 ‘조용한 혁명’을 진행 중이다. 7월말 유치한 외자로 초등교육사업, 생활문화사업 및 해외사업에도 적극 진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쯤 기업공개도 계획이다. 이렇게 사업을 다각화하다 문어발식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재벌 닮아갈까봐요? 문어발식 확장이란 관련없는 사업을 돈만 바라보고 쫓아갈 때 쓰는 말이죠. 하지만 전 교육 외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긴 교육이란 게 좀 범위가 넓긴 하지만, 하하….”

만난사람=서영아기자

▼변재용 사장은…▼

▽56년 전북 고창생

▽72년 서울고 입학

▽75년 서울대 공대 토목공학과 입학.

이때부터 10여년간 구로동 상계동 등지 에서 야학활동

▽78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10 개월간 복역

▽81년 서울대 졸업, 야학 동료였던 박희 옥씨와 결혼

▽82년 영재수학교육연구회 설립

▽91년 한솔출판 설립

▽95년 한솔교육 설립

▽2001년 한솔교육 종업원수 1만명, 회 원 40만명, 연매출 2200여억원 규모

▼아이를 '부자'로 키우는 법▼

1.고정관념을 버려라〓일류대학 좋은 직장 등 부모가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해온 고정관념은 아이의 가능성을 막는 걸림돌이다.

2.좋아하는 일을 찾게 하라〓좋아하면 집중하기 마련. 일을 즐기고 성취감을 맛보는 사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3.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게 하라〓돈 얘기를 못 꺼내는 게 미덕은 아니다. 받아야 할 돈은 당당하게 요구하도록 가르치라.

4.유산을 남기지 말라〓유산은 자식을 의존적이고 나태하게 만든다. 또 부모가 자식의 삶에 개입하게 한다.

5.돈보다 시간을 낼 줄 아는 부모가 되라〓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하라.

6.사람이 곧 재산임을 가르쳐라〓사람에 대한 신뢰와 투자야말로 부를 창출하는 기본이다.

7.버는 법보다 쓰는 법을 가르치라〓주어진 돈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 즉 돈을 통제하는 능력부터 가르쳐야 한다.

8.돈을 찾아다니게 만들어라〓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장을 발로 뛰어야 한다.

9.실패를 권장하라〓실패에서 성공의 실마리가 보인다.

10.올바른 리더십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을 물려줘라〓남의 내면을 이해해야 리더십이 생긴다. 또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아는 ‘주제파악’능력이 있어야 인생에 끌려다니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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