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고령자 교통사고 날마다 8명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14분


법무사 김모씨(75)는 5월 22일 서울 송파구 잠실운동장 근처 4차선 도로에서 차선변경을 하던 중 옆차선에서 운행하던 전모씨(40·여)의 승용차 측면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99년 11월 경기 수원시 편도 1차선 국도에서는 박모씨(72)가 몰던 1000cc 오토바이가 마주 오던 포크레인(운전자 최모씨·35)을 들이받아 중상을 입고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고령인 운전자들이 모두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떨어져 긴급상황에 재빨리 대처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분석했다.

인구의 고령화 추세에 따라 고령자 교통사고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 따르면 99년 한 해 동안 65세 이상의 운전자나 보행자가 유발한 교통사고는 모두 2743건으로 전체 교통사고 27만5938건의 0.99%를 차지했다. 95년의 고령자 교통사고는 1372건으로 전체 사고 24만8865건의 0.55%에 불과했다. 이후 해마다 고령자 사고 건수와 전체 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져왔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97년 우리 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67.9명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6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관계자는 “고령 운전자들은 커브길 등 도로조건이 나빠 주의를 요하는 장소, 기상상황이 좋지 않은 곳에서 상황판단력이 젊은이보다 떨어지고 운전기술이 부족해 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또 고령자들은 같은 사고를 당한 젊은이들보다 사망할 확률도 높다. 99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치사율은 7.6으로 전체 치사율 3.4의 두 배를 넘는 다.

보행자 사고만 놓고 보면 고령자의 비중은 더욱 크다. 99년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 중 71세 이상이 피해자인 사고는 20.8%였으며 61∼70세가 17.5%, 51∼60세가 16.1%로 51세 이상 고령자의 사고가 54.4%를 차지했다.

‘바른 운전자들의 모임’의 설재훈(薛載勳)공동대표는 1일 “노인들의 보행 속도는 0.8m/초로 일반인의 1.2m/초로 느려 노인 보행자 사고의 70%는 횡단 후반부에서 발생한다”며 “자동차를 보지 않고 땅만 보고 횡단하거나 무단횡단을 많이 하는 노인 횡단의 특징도 사고 유발요인”이라고 말했다.

사고를 당한 뒤 처리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 99년 12월 제주에서는 당시 88세이던 김모씨가 남편 이모씨(93)와 새벽에 성당을 가던 중 골목길 안쪽 주차장에서 나오던 시내버스의 회전반경을 피하지 못해 차에 살짝 부딪혀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운전사는 ‘큰 사고가 아니다’고 판단, 두 노인을 아직 문도 열지 않은 회사 지정 병원에 후송하고 자리를 떴다. 김씨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남편과 함께 1시간 동안 병원 대기실에 방치됐다가 혼절해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김씨의 유족은 “두 노인이 운전자의 말만 따른 것이 화근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바른 운전자들의 모임’은 2일 ‘세계노인의 날’을 맞아 “운전자들은 노인이 왜 느리고 무단횡단 하는지를 이해하고, 교통신호보다 노인의 움직임에 주의해 운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문위원단〓내남정(손해보험협회 이사)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유광희(경찰청 교통심의관)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정보화(건설교통부 화물운송과장)

▽특별취재팀〓윤정국차장(이슈부 메트로팀·팀장) 이인철( 〃 ·교육팀) 송상근( 〃·환경복지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송진흡(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기자(사회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해동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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