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빗나간 교통단속

  • 입력 2000년 4월 3일 19시 22분


최근 서울의 한 경찰관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대학생들로부터 집에서 돈을 가져오도록 해 받은 뒤 풀어준 사실이 보도돼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자동차 보유 대수가 1000만대를 넘었으나 우리의 교통문화는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운전자들의 교통안전 의식이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통위반을 적절히 단속해야 할 교통경찰이 뇌물수수 함정단속 과잉단속 등을 일삼는 것도 교통문화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경찰청과 각 지방경찰청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교통경찰에 대한 운전자들의 불만과 개선의 목소리가 다수 올라와 있다.

S씨(여)는 서울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음주운전을 단속하던 경찰이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한 사례를 고발했다.

이 글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서울 서대문구 어느 지역에서 S씨를 태우고 운전하던 남자 친구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경찰관이 경찰차로 가 조사를 받으라고 해 타자마자 “우리 이렇게 밤 늦게 고생하는데 얼마 줄거냐”고 대뜸 물었다.

남자 친구가 당황한 나머지 5만원을 말하자 경찰관은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냐”고 화를 내며 ‘법대로 하자’고 요구해 음주 측정을 했으나 단속 기준치에 못미쳐 그냥 풀려났다는 것.

지난해 2월 당시 이무영(李茂永)서울경찰청장은 일선 경찰서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경찰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리 행태를 스스로 고백해 화제가 됐었다.

이청장은 “교통단속과 관련한 경찰의 법 집행이 적발 건수 위주로 이뤄져 의경이 자신의 할당 분량 20건 외에 고참과 상급 경찰관의 분량까지 떠맡아 마구잡이로 딱지를 떼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소속돼 교통단속 업무를 맡았던 의경 출신의 방재수(房在洙)씨는 “딱지를 많이 끊지 않고 내무반에 돌아가면 근무를 게을리했다는 취급을 당할 정도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적발 건수를 올리려다 보니 경찰의 단속이 교통소통을 원활히 하거나 사고를 예방하기 보다는 실적 위주로 이뤄져 운전자들의 불만을 사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를 지난 곳에서의 신호위반 단속 △과속위험구간의 끝에서 적발하는 과속 단속 △한적한 지방 국도에서 운전자가 볼 수 없는 곳에 경찰차를 세워 놓고 하는 단속 등을 대표적인 과잉 및 함정단속으로 꼽고 있다.

전북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린 한 운전자는 “장수군의 한적한 도로에서 경찰관 3명이 신호위반을 단속하고 있다”며 “이는 단속 실적을 올리기 위한 함정단속”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 운전자는 서울경찰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경찰관이 운전자가 볼 수 없는 가로수 뒤 등에 숨어 있다가 신호 위반을 단속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호등 앞에서 노출된 상태로 단속해 신호위반을 사전에 막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운전자는 “서울 노원구 S대 정문 앞에서 무단 횡단을 단속하는 경찰관은 보행자들이 무단 횡단을 하고 난 뒤 나타나 적발을 하곤 한다”며 “그같은 행태는 사고 예방보다는 단속 자체를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운전자들은 최근 경찰청이 설치 지점을 늘리고 있는 과속단속 무인카메라의 경우도 예고표지판을 운전자의 눈에 보다 쉽게 띄는 곳에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생업접고 고발나선 전직의경 방재수씨 ▼

“단속을 위한 단속이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의경으로 2년여간 교통단속 업무를 담당했던 방재수(房在洙·36)씨는 요즘 서울과 지방을 다니며 교통경찰의 함정단속 실태를 파악, 일반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지방경찰청이나 경찰서 관계자들에게는 함정단속을 하지 말도록 조언하고 있어 경찰에는 ‘귀찮은 인물’로 찍힌 상태.

그는 지난해 1월 서울의 대표적인 함정단속 지점 250곳을 파악해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은 조사 결과 함정단속으로 확인될 경우 단속 경찰관을 모두 철수시킬 계획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함정단속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지금도 함정단속이 비일비재합니다.”

방씨는 함정단속이 교통안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운전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줘 운전자와 교통경찰간의 거리감과 적대감만 높인다고 지적했다.

그가 경찰의 함정단속을 개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87년 군에서 제대한 후 사업을 하며 10년 정도 차를 몰고 전국을 다니면서 체험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함정단속에 직접 적발되기도 하고 다른 운전자들이 적발되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몇몇 사람에게 함정단속 지점을 알려주다 96년부터는 아예 생업을 접어두고 본격적인 함정단속 고발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단속 24시 방어 25시’ ‘안전운전 돈 버는 운전’이란 책도 냈다. 이 책들은 함정단속 지점, 무인단속 카메라 설치 지점, 사고가 잦은 도로 등에 관한 정보도 담고 있다.

방씨는 “교통경찰은 ‘고통경찰’로 불릴 만큼 고된 업무를 하고 있는데 함정단속 등 일부 문제 때문에 운전자나 일반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 새천년 운전예절 ▼

나는 면허는 땄지만 그동안 미숙한 솜씨 때문에 직접 차를 운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갑자기 차가 생겼다. 1년 전 호주에서 대우자동차 레간자 CF(상업광고)를 촬영했는데 승용차를 보너스로 받은 것이다.

CF 촬영 중 운전을 해 보았기에 나는 자신있게 차를 몰고 서울 시내로 나섰다. 물론 ‘왕초보’라는 큼지막한 글자를 뒷 유리창에 써붙였다. 호주에서 ‘초보운전’이란 글자를 차에 써붙였더니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양보를 해주는 등 친절하게 대해줬던 경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가 꽉 막힌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지날 즈음, 나는 차로를 바꾸지 못해 우물쭈물했다. 그 순간 ‘빵빵’ 하는 경적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시끄러운 경적에 더욱 당황했고 도대체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 지 막막했다. 결국 나는 유리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미소작전을 폈다. “저 김혜수인데요, 죄송합니다,초보라서요….” 연예인이었기에 망정이지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호주나 홍콩 등에 가 보면 시내 도로에서 서울처럼 그렇게 많은 경적을 들을 수 없다. 서울에서는 조용해야 할 주택가 골목길에서도 ‘빵빵’ 소리를 숱하게 들을 수 있다. 또한 올림픽대로나 고속도로에서는 대형차가 엄청난 경적을 울려대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

어차피 막히는 도로, 조금만 참으면 될 텐데…. 경적을 울리는 것은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과도한 경적은 도시를 시끄럽게 하는 ‘불쾌한 음악’이다. 경적을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습관처럼 울려대지는 않는 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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