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조선족 국적세탁 신종 사례

  • 입력 2001년 12월 5일 18시 34분



지난해 7월 불법입국한 조선족 이모씨(47·여)는 한국에서 ‘최옥녀’로 불린다. 본래 고향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다칭(大慶)시지만 전북 남원시 산내면으로 바뀌었다. 나이도 47세가 아니라 58세로 실제보다 11세나 많다.

호적상 이씨는 다섯살 연하의 권모씨와 결혼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 이씨는 호적상의 아버지 최모씨의 생년월일은 물론이고 호적에 올라 있는 일면식도 없는 일가 친척들에 대해서도 훤히 꿰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최옥녀로 둔갑한 조선족 이씨는 지난해 6월 한국의 호적에 해당하는 중국의 호구부와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거민신분증 등을 위조해 비자를 발급 받고 입국해 한국 국적을 신청했다. 이씨가 중국 신분증을 위조하고 ‘국적세탁’을 위해 조선족 브로커에게 지불한 돈은 1200만원이었다.

▼법망을 파고드는 불법입국 신종수법 실태▼

조선족의 불법입국 수법이 갈수록 다양화, 지능화하고 있다.

밀항이나 위장 결혼 같은 고전적인 수법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최근에는 호적은 남아 있지만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이른바 ‘무연고 호적’을 찾아내 조선족 동포 1세대로 신분을 위장, 합법적인 입국을 가장하는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 불법으로 입국해 돈을 모으면 다시 중국으로 떠나는 것과는 달리 아예 국적을 세탁해 한국에 눌러 앉으려는 것이다.

4일 경찰은 200여명에 이르는 조선족들을 조선족 동포 1세대로 위장시켜 비자발급에서 국적세탁까지 패키지로 알선해 준 조선족 브로커 조직원과 의뢰자 10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호적만 살아 있으면 국내 연고자의 초청이 없더라도 자유로운 입국을 허용하고 있는 재외동포법을 교묘하게 악용한 것이다.

▼수법▼

조선족 브로커의 국적세탁 수법은 크게 2단계로 돼 있다. 1단계는 국내에서 무연고 호적을 수집하는 단계. 이들 역시 대부분 국내 불법체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체류 당시 알게 된 혼인 귀화자나 종친회 등으로부터 호적만 남아 있고 생사를 알 수 없는 호주의 이름을 알아내 해당 면사무소 등에서 호적을 발급 받아 중국으로 보내는 것이다.

한국 호적을 입수한 중국 현지 브로커의 2단계 작업은 중국 공무원을 매수해 국내 호적상의 호주 명의로 된 중국 호구부와 거민신분증, 여권 등을 위조하고 조선족을 호적상의 인물로 집중 교육하는 단계.

경찰에 따르면 브로커 조직은 신분을 위장해 입국하려는 조선족에게 국내 호적자료와 중국 이주 경위, 위장가족 구성에 따른 출생 과정과 가족 관계 등 허위의 내용을 약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외우도록 했다.이들은 또 시골 노인들이 수십년 전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조선족으로 하여금 한국으로 자주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도록 해 진짜 가족인 것처럼 믿게 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점▼

경찰에 붙잡힌 브로커 조직원의 비밀 장부에는 196명의 조선족 이름이 기록돼 있어 국내에서 처음 적발된 신종수법이 이미 중국에서는 상당히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수사를 한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문제는 이들이 국적을 취득한 뒤 잠적해 버릴 경우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무연고 호적상의 호주나 진짜 자녀들이 나타날 경우 국내 호적 체계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앞으로 국적 회복 심사를 더욱 철저히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그러나 99년 9월 재외동포법이 제정된 이후 국적회복 신청자가 늘어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정부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위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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