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대학교수 잇단 논문 표절…학자양심 도마위에

  • 입력 2001년 11월 22일 16시 26분


대학 교수들의 잇따른 논문 표절 파문으로 학자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부 교수들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학술지에 표절 논문을 게재해 물의를 빚은 데 이어 인천 모대학 교수가 제자의 석사학위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학회지에 게재했다가 21일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논문 표절 뿐만이 아니다. 연구비를 허위로 청구하거나 유용하는 등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행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 안팎에서는 올 것이 왔다 거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는 등의 자성론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학계의 도덕적 해이=서울대 S교수는 최근 한 학회에서 발표한 5편의 논문 가운데 1편만 인용 근거를 밝힌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젊은 교수들 사이에 다른 사람의 앞선 연구를 무시하고 모든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는 그릇된 자기 과시욕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 며 한탄했다.

수도권 A대의 한 교수는 1999년 제자의 석사학위 논문과 외국 논문을 표절했다가 대학에서 경고 조치를 받았다. 대학측은 표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3년째 해당 교수에게 강의를 배정하지 않고 있다. 이 대학에서는 ‘표절은 범죄’ 라는 문구가 담긴 표절 교육 자료와 규정을 만들어 교수와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교수들의 표절과 관련해 대법원은 96년 “제자의 연구 논문을 표절한 대학 교수의 해임은 정당하다” 고 판결해 학계의 표절 관행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연구비 허위 청구나 유용 등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모 대학 교수는 지난해 동료 교수의 이름을 도용해 연구비를 부풀려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공동연구비 1200만원을 타낸 사실이 드러나 지난달 학교측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연구비 유용 등으로 인해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비를 환수한 건수는 지난해 18건(1억9338만원), 올해 12건(2억8658억원)이었다.

▽문제의 원인=표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국내 학문 풍토가 표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아주대 경영학과 L교수는 석달 전 국내의 한 학회지에 실린 논문이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을 발견하고 학회측에 항의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외국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 산하 통신학회측은 표절은 연구자의 창의력을 가로막는 ‘비열한(dirty) 행위’ 라며 표절한 논문을 게재한 국내 교수들의 사과를 강력히 요구했다.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교수들이 표절 유혹에 쉽게 굴복하기도 한다. 각 대학들이 교수들의 강의와 연구 실적 등을 평가해 성과급, 승진, 재임용 등에 반영하는 교수업적평가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제 학술지 표절 논문 파문으로 해임된 경북대 박모 교수는 “연구 실적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심하다 보니 박사과정 논문을 제대로 검토할 여유가 없었다” 고 털어놨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논문 표절과 관련된 교수들이 사표를 내거나 해임되는 등 ‘응분의 처벌’ 을 받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학계의 풍토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주대 경영학과 독고 윤(獨孤潤) 교수는 “표절은 파렴치한 범죄 지만 이를 밝혀내는 것은 극히 어렵다” 며 “미국 등 학문 선진국들처럼 표절 사실이 밝혀지면 언제든지 중징계를 내릴 수 있는 학문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 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수 “논문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공개함으로써 표절행위를 차단하는 한편 표절이나 연구비 유용 등 자질이 의심되는 교원은 중징계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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