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남동해 적조 어민 발동동

  • 입력 2001년 8월 30일 18시 55분


“내다버리기는 정말 내키지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썩어가는 고기를 그냥 놔두었다가는 멀쩡한 놈들까지 죽을 판이니….”

30일 오후 간간이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인부 5명과 적조로 폐사한 우럭을 뜰채로 건져내던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김영신(金英信·51)씨는 “하도 많이 죽어나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에 이르는 김씨의 어장에서는 이날도 죽은 우럭을 대형 박스로 10개 넘게 건져냈다.

통영해경 경비정을 타고 가두리 양식장 수십 곳이 밀집한 삼덕리 연안에 다가서자 상큼한 갯내 대신 코를 찌르는 악취가 확 풍겨왔다. 고기 썩는 냄새가 진동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는 살점이 허물어지거나 입을 쩍쩍 벌린 채 죽은 우럭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도 기력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 이 양식장의 인부 이모씨(55)는 “올해는 적조 밀도가 높아서인지 유달리 죽어나가는 고기가 많다”고 말했다.

통영지역 양식어민들은 대부분 언제 밀어닥칠지 모르는 적조띠를 감시하며 황토를 쌓아둔 가두리 양식장 언저리에 앉아 연방 담배를 빨아대고 있었다. 통영시 한산면 박모씨(42)는 “빚을 얻어 양식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통영항에서 뱃길로 18㎞ 가량 떨어진 곤리도 주변 해역을 돌아온 통영해경 소속 허윤 일경(21)은 “오늘은 20㎜ 가량의 비가 내려 적조가 약간 옅어졌으나 언제 고밀도 적조띠가 밀려올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전남 여수시 화정면 월호마을 앞 해상 가두리 양식장. 양식장에서 300여m 떨어진 해상에 여수시 어업지도선과 바지선이 흙탕물을 쏟아내자 인근 해역이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누런 물결이 번져나갔다.

어업지도선이 지나간 뒤 이번에는 2.5t짜리 어선 5척이 양식장 주위를 돌며 물줄기를 뿜어냈다. 이 일대는 남해안에서 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깊어 해상양식의 최적지로 꼽혀온 황금어장.

계속된 적조로 피땀으로 키운 우럭과 돔이 연일 수백마리씩 죽어나가자 어민들은 남은 고기라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루에도 서너번씩 황토를 뿌리고 밤에도 피해가 있을지 몰라 양식장에서 새우잠을 청한다.

우럭 7만마리를 양식하고 있는 월호마을 이장 황천귀(黃天貴·47)씨는 “하늘이 돕지 않는다면 남해안 양식장은 머지않아 ‘죽음의 띠’로 뒤덮일 것”이라며 “다음달 수협 위판 때 성한 고기를 내놓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전 우럭과 넙치 등 40만마리가 폐사한 여수시 경호동 앞 해상 가두리 양식장. 오전부터 비가 내리고 수온이 섭씨 22도를 오르내리면서 적조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어민들은 황토 살포작업을 잠시 중단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우럭 20만마리 중 5만여마리가 순식간에 떼죽음당하는 피해를 본 박동천(朴棟泉·52)씨는 “밀려온 적조를 빤히 보고서도 어찌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3년여 동안 키워온 고기를 파묻을 때는 꼭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화정면 화산어촌계장 정성진(鄭成津·53)씨는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문어와 꽃게잡이 철이지만 어장에 적조가 퍼져 손을 놀리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조띠가 조류를 타고 북상하자 경북 동해안 지역 어민들도 초비상이다.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 앞바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광어 우럭 등 40여만마리를 키우고 있는 한상초씨(49)는 “언제 적조띠가 양식장을 덮칠지 몰라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시 구룡포읍 하정1리 해안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진영수산 대표 이상희씨(53)는 “매일 30분 간격으로 물을 떠 현미경으로 적조 밀도를 검사하고 있다”며 “수온이 높아지면서 어병이 생긴데다 적조까지 덮쳐 큰 피해가 예상된다”며 울상을 지었다.

현재 경주 감포읍에서 포항시 대보면 연안까지는 육지에서 1㎞ 가량 떨어진 해상에 유독성 적조띠가 강하게 형성돼 있으며 이 적조띠의 일부는 울진지역 해상까지 뻗치고 있다.

경북 동해안으로 적조가 확산되면서 양식장이 밀집된 경주 포항 영덕 울진지역 양식어민들은 대규모 피해를 우려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포항·통영·여수〓정용균·강정훈·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