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자립형사립고 도입 혼란 "학부모만 멍든다"

  • 입력 2001년 8월 17일 18시 26분


자립형 사립고 시범 도입 계획을 둘러싸고 교육인적자원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의견조율을 못한 채 신경전만 계속 벌이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은 유인종(劉仁鍾) 교육감이 16일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 직후 반대 입장을 밝힌 뒤 파문이 확산되자 다시 17일 “희망 학교의 신청을 받아 심사 결정하겠다”며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해 교육계의 비난을 사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말 바꾸기〓유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이 자립형 사립고 도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9일 기자들과 만나 “입시 과열을 부추길 우려가 있어 일부 계층이 요구한다고 해서 도입할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10일 최희선(崔熙善) 교육부 차관과 만나 “내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건이 안돼 신중을 기하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듯한 발언을 했다.

또 유 교육감은 16일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 직후 “자립형 사립고 운영 문제는 시도별로 교육여건 등 지역 실정을 감안해 추진키로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시범 운영부터 반대하는 것은 잘못” “실정에 맞게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등 교육감들간에 고성이 오갈 정도로 의견이 엇갈렸다.

기자들이 이날 “도입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질문하자 유 교육감은 “설립 신청은 받겠지만 반려하겠다”며 반대의 뜻을 다시 분명히 했다.

▽허둥대는 교육부〓교육부는 비중이 큰 서울시교육청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공청회만 한차례 갖고 무리하게 자립형 사립고를 추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반대 표명이 있은 뒤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시교육청의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채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해 발표한 것도 혼란을 가중시킨 요인이다.

특히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이 17일 희망학교 신청을 받아 심사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자 “시행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성급하게 해석해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신청 접수조차 받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한 요식행위라고 강조했다.

▽도입계획 혼선〓한완상(韓完相)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6월 7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립형 사립고는 시도별로 1, 2개씩, 모두 10∼20개교를 선정해 2003년부터 시범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7월 20일 교육여건 개선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30개교 이내에서 2003년부터 시행하되 희망 학교는 2002년부터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데 교육제도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경제 관련 부처의 요구가 반영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려는 고교 출신의 고위층이 세게 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데다 일부 사립고의 로비도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 전망〓교육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희망 학교의 신청권이 존중돼야 하고 시도교육청의 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문제점을 보완해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여전히 “신청서를 희망학교로부터 받는 등 공문과 관련된 업무는 시행하겠지만 제도 도입은 없다”고 재차 밝혀 자립형 사립고 추진 계획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시도에서 시행하더라도 본격적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인철·박용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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