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사채폭력 갈수록 악질조직화

  • 입력 2001년 8월 14일 18시 31분


주부 김모씨(34)가 사채업자 이모씨(49·서울 노원구 상계동) 등 3, 4명과 여관방을 돌며 고스톱에 빠져든 것은 96년 9월. 김씨는 한달 만에 전세자금 등 1500여만원을 날려버린 뒤 사채업자 이씨에게 2000만원을 추가로 빌렸다.

하지만 이씨가 선뜻 빌려준 이 ‘미끼 돈’은 김씨를 노예로 전락시켰다. 또다시 돈을 모두 잃은 김씨는 “돈을 갚지 않으면 도끼로 쳐죽이겠다”는 등 이씨의 갖은 협박을 견디다 못해 ‘돈을 갚지 못하면 윤락행위를 강요해도 좋다’는 내용의 ‘윤락행위승인서’를 써주고 말았다.

98년 초 이씨는 끝내 돈을 갚지 못한 김씨를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있는 자신의 윤락업소에 묵게 하면서 1일 화대 15만∼20만원 중 2만∼3만원을 제외한 전액을 가로챘다. 김씨는 99년 도박과 윤락 사실을 알게 된 남편에게 이혼당했다.

14일 경찰에 붙잡힐 때까지 사채업자 이씨가 김씨 등 주부 3명에게 뜯어낸 화대는 무려 10억6500여만원에 달했다.

또 사채업자 송모씨(51·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는 95년 1억7000만원을 공모씨(43·여·정육점 운영)에게 빌려준 뒤 6년간 4억5000여만원을 뜯어내고도 잔금 4000만원을 갚지 않는다며 ‘신체포기각서’를 강요하다 이날 경찰에 검거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경찰 조직폭력 및 갈취폭력 집중단속 분석(5.26~8.10)

사채폭력부동산갈취폭력노점상상대갈취폭력도박 등 사행행위영세주점상대갈취폭력청부갈취폭력여성상대갈취기타
검거인원(명)1535724061874061081315447825045141
점유율(%)10015.71.22.67.020.53.116.333.6

피해액100만원이하100만∼500만원500만∼1000만원1000만∼5000만원5000만원이상
피해자수9,5822,3491,0101,03620414,181
점유율(%)67.616.67.17.31.4100

이처럼 악덕 사채업자들의 횡포와 서민들의 피해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돈을 갚지 못하면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처리해도 된다는 ‘신체포기각서’는 사채업계에서 이미 상당히 확산됐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전주(錢主)와 협박폭력조 등 분업화까지 이뤄지면서 횡포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끊임없는 사채폭력〓경찰에 따르면 사채폭력에 대한 집중단속이 시작된 5월28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모두 2406명의 사채폭력배가 검거됐다. 하루평균 30여명이 경찰에 붙잡힌 셈이다.

이 기간에 검거된 사채폭력조직 12개 중 7개 조직은 생겨난 지 1년 미만인 신흥조직으로 검찰과 경찰의 검거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채폭력조직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찰은 또 최근 사채업계가 분업화하면서 더욱 악질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50억∼100억원을 동원할 수 있는 큰손들은 소액전주를 거느리고 소액전주들은 폭행 협박조를 고용하는 식의 분업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서민 채무자들의 피해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채무자에게 더욱 무리한 채무변제 각서를 요구하고 윤락행위 강요나 인신매매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약한 처벌규정〓사채폭력배들에게 적용되는 죄명은 대부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뿐으로 이는 처벌이 가벼워 사채폭력을 근절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협박에 시달려온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비해 정작 폭행에 의한 피해는 전치 2주정도가 대부분이라서 경찰에 붙잡혀도 6개월 안팎이면 다시 사채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재정경제부가 사채 금리에 상한선을 두기 위해 제정키로 한 ‘금융이용자보호법’이 위헌시비에 휘말리면서 국회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것도 강력한 사채폭력 처벌의 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채업 자체는 손쉬운 금융의 조달방법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라지기 어려운 것”이라며 “하지만 사채와 함께 폭력과 협박 등이 동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적 합의에 의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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