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경기 북부 가뭄/말라붙은 논 먼지만 '풀풀'

  • 입력 2001년 5월 16일 18시 29분


말라붙은 논, 갈라진 농심(農心).

16일 오후 경기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 일대. 시원하게 뻗은 3번 국도 양옆으로 넓은 들판에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다. 언뜻 밭처럼 보이지만 실은 말라붙은 논. 모내기하는 농부들로 가득 차야 할 들녘에는 온종일 물을 대주는 소방차들만 오갈 뿐이다. ‘먼지 나는’ 논은 갈수록 말라붙고 있다.

강수량 부족으로 한탄강 일대의 가뭄 피해가 커지고 있다. 동두천 급수 중단 사태뿐만 아니라 한탄강 상류의 농경지에도 ‘농사 중단’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주민들은 “지금도 걱정이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비가 오지 않을 경우가 더 두렵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피해 실태〓한탄강 일대 613㏊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는 연천군 고문양수장 아래쪽으로는 완전히 물이 말라 버렸다. 7m 높이의 ‘보’위로 물이 넘쳤었지만 현재 수위는 2m도 되지 않는다. 더 아래로 3㎞쯤 떨어진 연천읍 은대리 일대 논은 밭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모내기철을 놓치고 있다. 농업기반공사 연천포천 지부는 이 일대 농지를 3부분으로 나누어 교환급수를 하고 있지만 하루 평균 12만t이던 고문양수장 공급량이 2만6000t으로 줄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10t의 물을 담는 소방차 3대가 하루 13회씩 논에 물을 퍼붓고 있지만 말라 버린 논은 ‘게눈 감추듯’ 물을 삼킬 뿐 표시도 나지 않는다. 못자리의 모는 이미 웃자라 생존율이 50% 정도에 그칠 것으로 농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은대리 주민 김관회씨(43)는 “이런 가뭄은 40년만에 처음”이라며 “당장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올 농사는 완전히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상류쪽 농민들은 그나마 들어오는 물을 전량 가둔 채 내려보내지 않아 하류쪽 농민들이 반발하는 등 농민 사이에 물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행정기관에는 물을 보내 달라는 항의성 전화가 온종일 빗발치고 있다.

동두천시는 한탄강 하류 취수장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고문양수장의 보를 열 것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농업기반공사는 수위가 2m도 되지 않는 현실에서 수문을 열면 최소한의 농업용수도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며 거절했다. 동두천시의 급수 중단 사태는 큰 비가 내리기 전에는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원인〓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유례없는 가뭄. 16일 현재 연천군의 올 강수량은 22.3㎜로 평년 171㎜의 1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반의 대부분이 현무암층이라 지하수를 찾아내는 것도 ‘백사장에서 바늘찾기’처럼 어렵다.

지난해 5월 연천댐 철거 이후 한탄강의 치수 시설이 사라지면서 담수 능력이 크게 떨어진 것도 원인. 지난해 봄에는 연천댐∼고문양수장 4㎞ 구간에 물이 가득 차 있었으나 댐 철거 이후에는 강바닥이 드러날 정도가 됐다.

한편 기상청은 “비가 많이 왔던 97, 98년의 경우 3∼5월 중순 강수량은 서울 수원 철원 등이 250∼290㎜였고 평년값도 200㎜내외였다”면서 “올해는 서울이 38.2㎜, 동두천은 27.5㎜로 예년의 15%수준”이라고 밝혔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고기압대의 세력이 유난히 강해 비를 머금은 기압골이 끼어들 틈이 없다”며 “6월 중순은 돼야 비다운 비가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댐 건설 논란〓96, 99년 연천군 일대 침수 피해의 원인으로 지목된 한탄강 연천댐이 지난해 철거됐다. 한탄강에 댐이 있으면 적은 강수량으로도 상류 지역에 홍수를 불러온다는 이재민들의 주장 때문.

연천댐이 철거된 이후 올 들어 취수장 물이 말라 동두천 급수가 중단되고 연천군 일대 농경지가 피해를 보자 해당 주민들은 하루빨리 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업기반공사 관계자는 “댐 하나만 있었어도 이같은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며 “식수와 농업용수를 위해 댐 건설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탄강 네트워크 이철우 사무처장(41)은 “한탄강은 심한 협곡을 통과하고 있어 댐이 건설되면 작은 비에도 쉽게 물이 차 올라 상류 지역에 홍수 피해가 우려된다”며 “댐 건설이 모든 자연재해의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10월 연천군 고문2리 일대에 저수량 3억6100만여t 규모의 다목적 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전망 및 대책〓농업기반공사는 연천군 일대 가뭄 해소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한탄강 지류인 차탄천에 물막이를 설치하고 95년 이후 철거했던 해동양수장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제2청 한인석 부지사는 “간이 양수시설을 가동하고 관정을 개발하는 등 응급조치를 서두르고 있다”며 “광역상수도를 끌어오고 한탄강 치수 시설을 설치하는 등 경기 북부의 장기 가뭄 해소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연천·동두천〓이동영·차지완기자>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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