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폭력시위 '비디오'가 바꿀까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51분


1일 노동절 집회가 큰 충돌 없이 끝난 데는 집회현장을 생중계한 노동계와 경찰간의 ‘비디오 경쟁’이 ‘1등 공신’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대우자동차 노조원 폭력진압사태 이후 맞는 노동절이었기에 자칫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우발적인 폭력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디오 렌즈 앞에서 2만5000여명의 시위참가 근로자와 1만5000여명의 경찰 모두 최대한 자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인터넷 생중계 등을 통해 집회의 전 과정을 지켜본 많은 시민은 “비디오 영상은 만약 있을지도 모를 폭력사태의 책임여부를 가릴 때도 중요하겠지만 폭력사태 자체를 사전에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며 양측의 ‘비디오 경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치열한 비디오경쟁〓이날 민주노총측이 투입한 영상촬영 노조원은 7, 8명. 이들은 모두 자체 영상동아리 소속 노조원들과 인터넷 방송국에 근무하는 노조원들로 집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경찰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빠짐없이 비디오에 담았다.

이들이 찍은 현장 모습들은 민주노총 홈페이지(www.nodong.org) 등을 통해 동영상으로 실시간 공개됐다.

경찰측도 서울지방경찰청과 각 지방경찰청에서 지원 받은 60여명의 비디오 촬영팀과 100여명의 필름사진팀을 가동했다. 이들이 찍은 사진필름만 200여통. 이들이 찍은 영상자료는 퀵서비스로 서울경찰청에 전달됐고 2, 3분짜리 동영상 13개로 편집돼 1시간 간격으로 서울경찰청 홈페이지(www.smpa.go.kr) 등에 올려졌다.

현장에서의 경쟁은 살벌하기까지 했다. 오후 4시40분경엔 일반 카메라로 현장사진을 찍던 사복 경찰관이 노조원들에게 카메라와 필름을 빼앗겼고 또 다른 영상채증팀 경찰관은 근로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절제된 시위양상〓이날 벌어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가두행진에서 경찰과 사소한 몸싸움은 있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지도부는 “경찰이 때리면 맞아라”며 노조원들의 과잉대응을 제지하는 등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노조원들도 경찰과 몸싸움을 하면서 “폭력은 행사하지 말자”며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한국노총 강익구(姜益求·44) 홍보국장은 “비디오 채증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면 궁지에 몰린 경찰에 국면전환의 기회를 주게 된다”며 “질서유지요원들을 임명해 최대한 절제된 집회를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도 한국노총의 가두행진이 시작된 오후 3시반경 서울역 북측광장 헌혈의 집 앞에서 경찰 마스코트인 포돌이 포순이 2명을 앞세워 ‘근로자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드는 등 부드러운 태도를 보여줬다.

▽합법성 논란〓이번 비디오 공방전에 대해 민주노총측은 “경찰이 집회현장에 나올 때는 정복을 입고 주최측에 그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며 “사복경찰관에 의한 비디오와 사진촬영은 직권남용이자 집회방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손낙구(孫洛龜·39) 교육선전실장은 “노동절 집회가 다행히 평화적으로 끝나 비디오 채증활동이 효과를 본 듯하지만 앞으론 집회현장에서 채증을 둘러싼 또 다른 폭력사태가 우려된다”며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는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는 공익적인 효과가 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없다”며 “불법시위나 폭력사태가 우려되는 집회에는 반드시 영상채증팀을 가동해 현장의 모습을 인터넷에 생중계하겠다”고 밝혔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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