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어린이를 지키자]보호 못받는 「보호규정」

  • 입력 1999년 3월 28일 17시 50분


‘통학버스는 앞지르지 않는다.’

‘통학버스가 일시 정지하는 경우 바로 옆 차로를 운행하는 차량은 일시정지해야 한다.’

‘왕복 2차로의 도로에서는 통학버스가 일시 정지하는 경우 반대 차로에서 오는 차량도 일시정지해야 한다.’

통학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는 초등학교 어린이나 유치원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97년 12월 마련된 ‘어린이 통학버스 보호규정’이다.

이 보호규정이 마련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실제 도로에서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24일 오전7시40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입체교차로 부근.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통학버스가 학생들을 태우고 연희동에서 연세대 정문 앞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옆 차로를 가던 일반버스와 승용차들이 마구잡이로 끼어들었다.

통학버스 운전자 신문선(辛文善·48)씨는 “다른 차량들이 끼어드는 것은 다반사”라며 “차량 통행이 많은 하교길에는 더욱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보호규정에서 ‘어린이차량’ 정지시 주변 차로의 차량을 일시 정지하게 하는 것은 차에서 내린 어린이들이 급하게 도로를 횡단하는 등 ‘럭비공’처럼 어느 방향으로 튈 지 모르기 때문.

이같은 보호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이륜차는 3만원, 승용차 4만원, 승합차 5만원 등의 범칙금과 함께 벌점 10점을 부과받는다. 경찰청 단속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앞지르기 위반으로 4백72건, 일시정지 위반으로 5백22건이 각각 적발됐다.

그러나 어린이차량을 운행하는 측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통학버스 보호규정의 보호를 받으려면 차량 겉면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승강기 발판의 높이를 1단 30㎝, 2단 20㎝ 등으로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 현재 통학버스 보호규정을 받도록 등록된 차량은 유치원 5백93대, 초등학교 7백66대, 일반학원 4백99대 등 2천3백86대.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 허억(許億)소장은 “도색(塗色)과 차량구조 등의 변경이 권고규정에 불과해 실제 어린이를 등하교시키는데 사용되는 차량 중에 색깔을 칠하지 않은 차량도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도색이나 구조변경을 하지 않더라도 운행엔 제한이 없으며 다만 일반 차량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을 뿐이어서 영세한 학원 등은 ‘노란색 어린이버스’로 바꾸고 있지 않다는 것.

허소장은 “1백만원 가량의 비용이 드는 도색 등을 의무사항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이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하나 재정지원 등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새로 통학버스로 사용하고자 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보호규정에 정하는 조건을 구비한 후에 등록을 허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기초등학교 김윤식(金允植)교사는 “통학버스가 아닌 일반 시내버스 중에 오히려 노란색 칠을 하고 다니는 버스가 많아 일반 운전자들에게 ‘노란버스〓통학버스’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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