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유원일/‘新鮮族’이 사는 길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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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 ‘신선족(新鮮族)’이란 우스갯소리가 나돌곤 한다. 말 그대로라면 ‘최신 유행을 따라 사는 젊은이들’쯤 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새로운 조선족’이란 말로 중국에서 오래 산 주재원이나 가족을 일컫는 신조어다.

말하자면 필자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필자는 이 말을 들으면 재미도 있지만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제 막 중국에 올 때는 깔끔하던 사람도 몇 년간 중국에서 때가 묻고 뒹굴다 보면 중국인과 별 차이 없는 매무새나 행동거지를 보이게 되는 마당에 이런 용어에서 자학적인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한중수교 11년을 넘어가는 시점이니 신선족이 생길 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간의 변화야 정말 천지개벽이라 할 만했고, 그 와중에 고생도 하고 성취도 하며 중국사회에 뿌리내리려 노력했던 사람들이 바로 신선족이 아닌가. 그러나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아직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구고 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인물이 없는 걸 보면 지금의 신선족은 뭔가 어정쩡한 상태인 것 같다.

왜 그럴까?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필자는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즉, 중국에 대해 뭔지 모르게 겁부터 내고 금기시하는 기류가 한국인들 사이에 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땅 팔고 소 팔고 마음 단단히 먹고 중국으로 넘어오는 게 아니라 살짝 발을 담가 봤다가 무슨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얼른 도망가자는 심리가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공장도 아파트도 거의 임대물건이고 중요한 자산은 한국에 모셔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자세를 중국인들이 환영할까?

요즘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차피 한국 부동산은 더 이상 오를 것이 없으니 그 대안으로 중국에 진출하거나 비싼 임대료를 내느니 할부로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아파트 구입을 위한 은행들의 대출경쟁, 외국인의 부동산 구입을 개방한 중국 당국의 정책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각자 판단할 일이지만, 필자는 이런 추세가 대단히 좋은 흐름이라고 본다. 어찌됐든 땅을 산다는 것은 정착의 의지가 엿보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땅의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이지만 50년, 70년씩 하니 소유권이나 다름없다. 또 그 안에 사용권의 전매가 자유로우니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실질적으로 통제의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그걸 빨리 알아채고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 중국에서 신선족들이 자리 잡고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는 날이 곧 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미국이나 일본에서처럼 중국에서도 그 2세들이 교육을 받고 3세를 낳아서 대를 이어가는 일도 생길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3세나 4세 중에서 중국 시민권을 얻고 인민대표(국회의원)가 되는 날도 있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대국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갖추고, 외교활동도 하고, 생존도 해 나갈 수 있으며, 우리의 역할도 당당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원일 WIL TRADING CO. 대표 중국 광저우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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