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황경성/부지런한 일본인이 부러운 까닭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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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의 한 TV 시사프로그램에서 한국의 로또 열풍을 크게 다룬 것을 보았다. 5000만원어치를 샀다가 수백만원밖에 건지지 못하자 자살한 사건도 거듭 소개됐다. 한국인의 ‘한탕주의’ 의식이 일본인에게 그대로 발가벗겨진 것 같아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의식에서 언제 벗어날까 안타까웠다. 언제부터인가 숱한 범죄와 가정파탄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한탕주의가 한국사회에 만연한 것 같다.

일본에는 매년 여름 최고당첨금 3억엔(약 30억원)짜리 ‘특별복권’이 발행된다. 보통 때 최고당첨금은 1억엔인데 여름과 연말 두 번만 3억엔으로 올라간다. 당첨이 잘 된다고 소문난 판매소 앞에는 판매 개시 전날 밤샘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100만엔(약 1000만원)어치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대개 기업체 사장이나 돈 많은 자영업자로 일종의 ‘고급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일 뿐이다.

복권에 많은 사람이 ‘꿈’을 거는 것은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복권 자체에 인생을 걸다시피 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역사가 길다보니 그간의 투기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자제력을 갖게 된 것일까.

일본인은 투기나 소비를 조장하려 해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10여년에 걸친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본 일본 정부는 몇 해 전 상품권을 전 국민에게 무료로 지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소비확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본에는 수많은 빠찡꼬 가게가 있다. 한국인의 ‘한탕주의’는 일본의 빠찡꼬 가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수년 전 필자는 중년의 한국인 노동자를 얼마간 집에 머물게 해 준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건설일용직 노동자로 일본에 건너왔다. 대리석 타일을 붙이는 힘든 일을 하면서 번 돈을 한국의 가족에게 꼬박꼬박 송금했다. 우연히 찾아간 빠찡꼬 가게에서 몇 번 대박(?)의 맛을 본 그는 빠찡꼬에 빠져 송금은 고사하고 빚까지 짊어져 결국 귀국할 수 없게 됐다.

도쿄(東京)의 신주쿠(新宿)와 우에노(上野) 등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및 술집이 밀집해 있어 ‘코리아 타운’ 분위기가 난다. 이곳에는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해 수많은 한국인이 돈을 벌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이 빠찡꼬 가게에서 핏발 선 눈으로 온종일 씨름하다시피 한다.

한국인은 왜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해 경제력을 갖추려 하지 않을까.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소비벽에 대해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개인의 인생관, 이윤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을 남발하는 금융기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현실만족적인 국민성에 아부하는 듯한 정부정책.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한국에 일본처럼 빠찡꼬 영업을 전면 허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주식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 직장을 건성으로 다니던 이들이 많았던 것처럼 아마 빠찡꼬를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15년 일본 생활을 통해 본 일본인은 대부분 성실하게 일해 번 돈을 저축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한탕주의 열풍에 휩싸인 한국 소식을 들으며 일본인의 근면성이 더욱 부러워진다.

황경성 도쿄복지대 강사·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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