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 논설위원의 추천! 이번주의 책]이번엔 다르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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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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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간 반복된 ‘거품호황 → 금융위기’ 패턴
이번엔 다르다/케네스 로고프, 카르멘 라인하트 지음·최재형 박영란 옮김/504쪽·2만2000원·다른세상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미국에서 구제금융법안과 관련한 토론이 진행될 때 한 시민이 ‘은행이 아니라 시민을 구제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저자들은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지만 전문가들이 ‘이번엔 다르다’며 허송세월하다 재앙을 키웠다고 
비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미국에서 구제금융법안과 관련한 토론이 진행될 때 한 시민이 ‘은행이 아니라 시민을 구제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저자들은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지만 전문가들이 ‘이번엔 다르다’며 허송세월하다 재앙을 키웠다고 비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10년 전쯤 소형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대형 금융위기로 알려졌으나 훗날 소형 금융위기로 재분류된 것이다. 1998년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무너진 것이다. 연방준비은행에서 25년간 근무한 빈센트 라인하트는 금융정책 의사결정에 주요 멤버로 참여했다. 그는 “총칼보다 몇 개의 단어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돈이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그 몇 개의 단어가 바로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였다.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난 미국의 금융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관련된 모든 경고 신호가 깜박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미국의 주요 금융 관련 지도자들과 많은 학자는 “이번엔 다르다”고 논쟁하면서 허송세월한 것이다.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에서 위기 경고 신호가 번쩍이고 있는데도 이른바 전문가들은 왜 ‘이번엔 다르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와 메릴랜드대 국제경제학센터장이자 경제학과 교수인 카르멘 라인하트는 ‘이번엔 다르다’는 그릇된 판단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800년 동안 66개국에서 반복된 호황과 불황의 역사를 통해 금융 흐름의 일정한 패턴을 찾는다. 그 결과 과도한 부채로 이루어진 호황은 늘 금융위기로 막을 내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호황기마다 ‘이번엔 다르다’고 착각을 한다. 당대의 정치가나 금융전문가들은 과거의 실수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웠으며, 가치 평가에 대한 과거의 규칙들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불과 10여 년 동안 두 차례나 위기를 경험하고 수차례 위기설에 시달린 우리나라에는 ‘이번엔 다르다’ 신드롬이 없었을까. 저자들은 금융위기에 앞서 항상 등장하는 말이 바로 ‘이번엔 다르다’라고 강조한다. 과다한 자금 유입으로, 빚을 많이 끌어다가 쓰면서 경기가 호황을 누릴 때 정치가나 경제학자, 그리고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낙관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이를테면 “지금의 호황은 건전한 기반 위에 세워졌으며 과거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식이다.

올해 초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가능성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불안감이 고조됐다. 우리나라도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국가 채무가 급증해 국가 신인도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일부 지방정부의 과다한 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번엔 다르다’ 신드롬에 빠지지 않도록 이번만은 제대로 대응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미국 서브프라임사태 생생한 뒷얘기▼

빅숏/마이클 루이스 지음·이미정 옮김/400쪽·1만6000원·비즈니스맵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미리 예측한 사람들이 있었다. 1997년 미국이 역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을 때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먼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회사들의 허상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10여 개 회사가 밝힌 수치와 실제 수치 간의 괴리를 지적하며 사기성 대출 행태를 비판했다. 펀드매니저 마이클 베리도 2004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도 사태를 직감하고 모기지 채권의 원금상환을 보장해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를 구매했다.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그가 엉뚱한 거래를 한다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얼마 뒤 그의 예측대로 주택시장이 무너졌다.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 출신인 저자는 거대 금융시스템의 모순을 발견하고 뛰어난 판단으로 파멸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면의 속사정을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그려냈다. 설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서 벌어졌을까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립스틱-치마길이 속설로 보는 경제▼

립스틱 경제학/경제교육연구회 지음/256쪽·1만2000원·위즈덤하우스

“불황일수록 빨간 립스틱이 잘 팔린다.”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그 외에도 ‘불황’을 감지할 수 있는 현상으로 꼽히는 게 여럿 있다. 짧아지는 치마 길이, 불티나는 로또, 판매량이 늘어나는 콘돔과 라면, 소주 등. 과연 이 속설들이 다 사실일까. 경제학자인 저자들은 속설 17개를 꼽아 그 유래와 이유를 분석했다. 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속설의 원인을 알아야 경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립스틱이 잘 팔리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쇼핑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다. 이 책은 립스틱과 화장술의 역사부터 돌아보며 ‘오래전부터 인기 있던 립스틱이 불황에만 잘 팔리는 걸까’란 의문을 갖게 한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대답이다. 립스틱은 매년 판매량이 늘어나는 상품이고 화장품 전체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소주는 막걸리 판매가 늘면서 속설이 뒤집어졌다. 이처럼 저자들은 속설 속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 진짜 경제 구조를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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