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미니기업을가다]<3>욕실매트제조 체코‘그룬트’

  • 입력 2007년 1월 3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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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매트 제조업체인 체코 그룬트의 이르지 노보트니 공장장이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씨의 작품으로 만든 명품 매트인 ‘콜라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콜라니 씨는 알파로메오, BMW, 닛산, 소니 등 유명 기업의 제품을 디자인한 산업 디자인계의 거목이다. 프라하=손효림 기자
욕실 매트 제조업체인 체코 그룬트의 이르지 노보트니 공장장이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씨의 작품으로 만든 명품 매트인 ‘콜라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콜라니 씨는 알파로메오, BMW, 닛산, 소니 등 유명 기업의 제품을 디자인한 산업 디자인계의 거목이다. 프라하=손효림 기자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씨와 그의 작품. 사진 제공 그룬트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씨와 그의 작품. 사진 제공 그룬트
■발 아래의 뷰티 혁명… 사양산업 편견 깨다

《그들은 너무 바빠 보였다. 낯선 방문자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오직 재봉틀을 돌려 욕실 매트를 만드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

‘믈라데부키’. 이곳에 자리 잡은 욕실 매트 제조업체 그룬트사(社)의 생산현장은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중국산 저가(低價) 제품의 공세로 세계 각국의 섬유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체코의 그룬트는 예외다.

이 회사는 ‘섬유산업=사양산업’이라는 공식을 깨뜨렸다. 임직원 230명이 근무하는 작은 기업이지만 가정용품인 욕실 매트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업그레이드한 아이디어로 세계 욕실 매트 시장을 평정했다.

체코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으며 생산량의 85%를 세계 32개국에 수출하면서 명품(名品) 대접을 받고 있다. 가격이 중국산 매트보다 3배 이상, 일반 유럽 제품에 비해 2배 이상 비싸지만 인기는 만점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어려운 욕실 매트 분야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1990년 한 대의 기기로 출발한 그룬트를 매년 평균 20∼30%씩 성장시켰다. 지난해 매출실적은 2000만 유로(약 250억 원)였다.

○ 욕실 매트가 ‘인테리어 제품’으로 진화

그룬트의 매트는 예술작품이다. 밝은 색을 활용해 수공예 작품처럼 보였다. 섬유회사 임원 출신인 창립자 이르지 그룬트 회장은 회장실 탁자에 매트 도안을 죽 늘어놓고는 제품 자랑을 시작했다.

“아라비아 문양에 금색을 많이 사용한 디자인은 화려한 제품을 좋아하는 중동 지역 고객을 겨냥한 거예요. 그룬트는 세계 지역별로 고객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파악해서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고객 취향별로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는 것이죠.”

그는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문을 닫는 섬유 관련 기업이 속출하는 것을 보면서 가격 경쟁으로는 중국산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디자인 차별화를 통해 단순한 기능용품인 욕실 매트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진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룬트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독일의 최고급 백화점인 ‘카우호프’에 매트를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으며 2001년부터 스위스 마노백화점에도 납품해 오고 있다.

이 회사는 연간 매출의 5% 안팎을 디자인 개발에 투자한다. 회사에 근무하는 5명의 디자이너 이외에 외부 유명 산업디자이너와 손을 잡고 분기마다 ‘컬렉션’을 선보인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씨를 디자이너로 활용하는 승부수를 던져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콜라니 씨는 알파로메오, BMW, 폴크스바겐, 닛산, 소니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산업디자인계의 거목(巨木). ‘콜라니’ 컬렉션은 60×90cm 크기의 제품이 100유로에 판매되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같은 크기의 일반 매트가 20유로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부가가치 창출이다.

○ 최고의 품질을 위해 실도 직접 생산

매트의 품질은 전적으로 실이 좌우한다. 다양한 색상과 굵기의 실을 확보해야 양질의 매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매트 기업들은 하청업체가 실을 만들어 납품하지만 그룬트는 설비를 갖춰 직접 실을 뽑아 내고 있다.

이르지 노보트니 공장장의 안내로 자동차를 타고 2분쯤 달려 인근 방적공장으로 향했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뒤로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탁! 타다닥 탁탁” 하는 기계 소리와 함께 더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짙푸른 색깔의 실과 흰색 실이 감겼다 풀리며 몇 차례 기계를 통과하자 밝은 하늘색 실이 뽑혀 나오고 있었다. 다른 기계들도 다양한 색깔의 실을 뿜어내고 있었다.

노보트니 공장장은 “매달 새로운 디자인의 매트가 생산되기 때문에 원하는 색깔과 굵기의 실을 즉시 공급하기 위해서는 직접 실을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노보트니 공장장은 “그룬트 제품이 세탁 뒤에도 올이 풀리지 않고 항균 기능도 뛰어난 것은 원자재인 실을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점점 까다로워지는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하기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룬트 제품의 보증기간은 3년. 일반 소모성 가정용품의 보증기간으로는 다소 파격적인 기간이다. 품질을 자신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증기간만 늘리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회사가 지게 된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룬트 회장은 “현재 6% 수준인 독일 시장 점유율을 2년 내 18%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며 “디자인과 품질로 차별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섬유산업도 첨단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하=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열흘이내 설립허가… 10년간 법인세 면제

“체코에서는 기업 설립 허가를 받는 데 열흘이면 충분합니다. 공장 허가도 쉽게 받을 수 있어요. 그룬트 같은 기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것이죠.”

이규남 KOTRA 프라하무역관장은 체코의 투자 여건을 높게 평가했다.

1989년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한 체코는 ‘사회주의 체질’에서 벗어나 경제 강국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체코 정부는 신규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고 있다. 기존 기업이 추가로 투자할 때도 10년간 법인세를 일부 감면해 준다.

국방과 안보, 금융부문을 제외한 모든 산업분야에 외국인도 내국인처럼 투자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놨다.

사회주의 ‘옷’을 벗은 지 17년 만에 웬만한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좋은 기업 투자여건을 만들어 놓은 것.

현대자동차가 유럽 생산기지로 체코를 선택한 이유도 체코 정부의 강력한 친(親)기업 정책에 있다. 현대차는 총 8047억 원을 투자해 2008년까지 체코 노소비체에 연간 30만 대 생산규모의 공장을 올해 초 착공할 예정이다. 현대차 측은 “투자 유치를 위해 체코 정부의 총리까지 나서 보조금과 감세(減稅) 혜택을 제공하겠다며 유치전을 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체코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그룬트처럼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중소기업들이 나타났다.

국가 경제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체코 통계청 및 중앙은행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1년 6048달러에서 2005년에는 두 배가 넘는 1만2152달러로 늘었다. 2001년 2.5%였던 실질 경제성장률도 2005년에는 6.1%로 높아졌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05년 체코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금액은 109억 달러로 한국(79억 달러)을 앞섰다.

프라하=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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