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전면 개방으로 가나]마늘전쟁 4년만에 ‘쌀빗장’도 흔들

  • 입력 2004년 9월 9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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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호주 등 9개국과 진행 중인 쌀 협상이 중국의 무리한 요구와 농민 반발에 부닥쳐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에 따라 정부의 협상 방향이 종전의 ‘쌀 관세화 유예’에서 관세화를 통한 전면 개방 쪽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 변수 최대 난제=현재까지 드러난 상대국의 요구조건은 △관세화 원칙 강조 △쌀 이외의 양자(兩者) 통상현안 해결 △자국산 쌀의 소매점 판매 허용 등이다.

정부의 협상 방향대로 관세화 유예를 하더라도 유예기간을 짧게 설정하고 저율관세 의무수입물량(TRQ)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특히 중국은 올해 국내 쌀 소비량의 4%(20만5000t) 수준인 의무수입물량을 2, 3배 이상 늘리고 이 가운데 자국산 쌀의 비중을 70, 80% 이상 유지해 달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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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쌀 이외 농산물에 부과되는 고율관세 품목을 축소하고 관세율도 낮추며 검역 등 농산물 수입절차를 개선해 달라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 협상팀이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의 불안요소=중국의 통상압력은 국내 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대(對)중국 무역흑자 규모가 132억달러로 전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은 수출시장이기 때문. 중국이 다른 품목과 연계를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은 통상 분쟁에서 다른 품목과 연계해 실리를 챙긴 사례가 적지 않다. 2000년 마늘분쟁이 대표적. 당시 정부는 1500만달러 상당의 중국산 마늘 수입을 막기 위해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중국은 곧바로 5억달러 규모의 휴대전화기와 폴리에틸렌 수입금지 조치로 맞서 결국 마늘 수출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협상 방향 바뀔까=정부의 협상 기본방향은 △관세화 유예를 기본 입장으로 하되 △상대국의 요구조건이 과도하면 실리 확보 차원에서 입장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최근 협상의 무게중심이 ‘관세화 유예를 기본입장으로 하되’에서 ‘입장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분위기다.

협상단을 이끄는 윤장배(尹彰培) 농림부 국제농업국장 등은 최근 잇달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다른 품목과 연계 요구 등 상대국의 요구조건이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당국자는 “관세화를 통해 쌀에 높은 관세를 매긴 뒤 수입하는 전면 개방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상대국과 타협을 이룰 가능성이 적으면 이달 중 관세화를 전격 선언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쌀개방 남은 시간표, 늦어도 연내 협상 끝내야▼

쌀 협상이 10일(현지 시간) 미국과 양자(兩者) 협상을 시작으로 ‘4라운드’에 접어든다.

정부는 미국과 4차 쌀 협상을 벌이기 위해 이재길(李栽吉) 외교통상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대사를 수석대표로 한 협상대표단을 미국 워싱턴에 파견한다고 9일 밝혔다.

미국에 이어 14일 중국, 17일 태국과 쌀 협상이 예정돼 있다.

한국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서 쌀에 대한 관세화 원칙을 10년간 유예받았다. 이 때문에 유예기간이 끝나는 올해 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협상 개시 의사를 통보했다. 협상에 응한 나라는 미국 중국 태국 호주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9개국.

정부는 이들과 1차 협상을 벌인 데 이어 국내 쌀 시장에 관심이 높은 국가를 추려 2, 3차 협상을 진행했다.

정부는 9월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3개월간 검증기간을 거칠 계획이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9월 말 타결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윤장배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9월 말 시한에 얽매이지 않고 쌀 산업의 이익을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협상을 지속하겠다”면서 “아무리 늦어도 금년 말까지는 협상을 종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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