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기 어떻습니까]<9>화학기계 中企 사장

  • 입력 2004년 9월 7일 17시 35분


코멘트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경영난으로 걱정하는 삼영화학기계의 서영위 사장. -박주일기자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경영난으로 걱정하는 삼영화학기계의 서영위 사장. -박주일기자
“이제는 어느 사무실 문을 닫아야 하나.” 삼영화학기계 서영위(徐榮威·65) 사장은 요즘 서울 구로구 구로본동 3층 공장 사무실을 둘러볼 때마다 자주 혼잣말을 한다.

서 사장은 최근 2층에 있는 사무실 두 곳을 닫았다. 사무실 운영비라도 아끼기 위해 사무직 인원을 3층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도장(塗裝)에 필요한 건조기와 혼합기 등 공정 설비를 선박 제과 자동차 화학회사에 납품하는 삼영화학기계는 지난해 매출이 40억원으로 전년보다 37% 줄었다.

“대기업과 중견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기업마저 중국 등 해외로 빠져 나가 일감이 뚝 떨어졌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산업 공동화(空洞化)란 말이 실감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상반기에는 공정 설비 재료인 철강 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지난해 대기업에서 건조기 주문을 받고 생산을 시작했는데 제품에 들어가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올해 거의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인건비도 올랐다. “대기업 노사의 임금협상 과정을 지켜본 직원들의 박탈감을 달래 주기 위해 지난해에 월급을 12% 올려 줬습니다.”

원자재난과 높은 인건비 때문에 이 회사는 올해 제품을 생산하면서 남는 돈이 없는 ‘마진 제로’ 상태라고 한다. 서 사장은 자신을 바라보고 일하는 30명의 직원 때문에 공장 기계를 돌린다고 털어놓았다.

남는 돈이 없다 보니 돈가뭄이 자주 찾아온다. 지난달에도 직원들 월급 줄 돈이 없어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 회사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부동산은 급전(急錢)을 구하기 위해 담보로 설정돼 이제는 더 이상 담보물도 찾기 힘들다.

“추석 보너스는 고사하고 8월에 빌린 돈 1억원을 이달에 갚아야 하는데 막막합니다. 33년째 가동되는 공장이 기술경쟁력 우수기업과 유망 중소기업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요즘처럼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는 5년 전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을 회사로 데려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앞으로 경영을 맡기기 위해 불렀지만 요즘 아들은 “대기업 일반 직원의 소득이 아버지보다 훨씬 높다”며 회사를 떠나려는 눈치다.

서 사장은 최근 ‘한참 사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참은 ‘한 달만 참아 보자’의 준말. 공장 임직원과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다가 붙은 말이라는 것.

“솔직히 말할까요. 우리 같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요즘 공장을 잘 운영하는 것보다도 문 닫는 시점을 잘 계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경제가 위기가 아니라는 얘기,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등은 다 꿈같은 말일 뿐입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다음은 3년간 직장을 옮겨 다녔지만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청년실업자의 이야기가 실립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