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24시/실속파 신세대⑥]“일로만 평가해 주세요”

  • 입력 2002년 4월 10일 18시 02분


#상황 1-월요일 아침.

“주말에 번지점프를 했는데 너무 재밌던데요.”(한 대기업 마케팅팀 A사원)

“그렇게 남아도는 힘이 있으면 직장 일에 쓰라고.”(팀장)

#상황 2-점심시간을 앞두고.

“점심 약속 있어?”(한 쇼핑몰 고객지원팀 팀장)

“예.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팀원 B씨)

“××씨는 팀장인 나보다 더 바쁘군.”(팀장)

몇 년 전 인기를 끈 가요의 한 구절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이 한국 기업 풍토에서 가능한 일일까. 일과 관련 없는 듯한 직장 상사들의 시시콜콜한 ‘주문들’로 고민하는 신세대 직장인이 적잖다. “일을 열심히 하는 만큼 개성을 존중해 달라”는 신세대 직장인들의 이유 있는 항변은 어떤 것일까.

한 홈쇼핑 상품기획팀의 MD인 박모씨(26·여)는 빨간색 바람머리, 7분바지, 맨발에 샌들, 청스커트에 스니커즈 등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신세대의 전형. 하지만 요즘 상사들로부터 MD 복장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박씨는 “도대체 이 복장이 업체관리나 매출과 무슨 상관 있느냐”면서 “일로만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9개월 전 입사한 한 백화점 홍보실의 이모씨(27)는 평일에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저녁 회식에 약속이 있다면서 몇 번 참석하지 못했다가 한마디 들었기 때문. 이씨는 “상사들이 지나가는 말로 ‘신입사원 때 개인 약속 잡아본 적 없다’는 소릴 했다”면서 “요즘은 나처럼 사는 친구들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할 일 없으면 집에 가는 거지, 왜 퇴근 시간 넘어서도 자리를 지켜야하죠.”

할 일을 다 마쳤으나 직장 상사의 일이 다 끝나지 않아 퇴근을 못할 때마다 한 공기업 인사팀의 이모씨(25·여)는 속으로 이처럼 투덜거린다. 이씨는 “나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이 퇴근시간마다 눈치작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일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논다는 게 내 신조”라고 말했다.

물론 신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지나친 개인적 또는 이기적 성향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다. 진분홍색, 보라색 등 독특한 색깔의 ‘야한’ 스타킹을 신다 최근 상사에게 면박을 당한 한 중견기업 기획실 김모씨(27·여). “스타킹도 맘대로 못 신느냐”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다가 “넌 좀 심하다”는 면박을 받았다.

또 업무성격상 밤늦게라도 불시에 일이 생길 수 있는 일부 직종은 ‘업무 따로, 개인생활 따로’가 어렵다. 이 때문에 아무리 전반적 세태가 개인적 삶을 중시하는 쪽으로 흘러도 여전히 과거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일하는 신세대도 적지 않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