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正과세로 가는 길]임대-사채업 탈세 유형

  • 입력 1999년 6월 30일 18시 31분


서울 강북구에서 3층짜리 상가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A씨의 지난해 임대수입은 2억3000만원. 하지만 세무서에 신고한 수입은 4700만원이다.

A씨가 실제로 내야 할 세금은 부가세 2300만원과 소득세 5140만원 등 모두 7440만원이지만 세무서에 낸 세금은 고작 394만원. 당초 내야 할 세금의 95%나 ‘절감’한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결’은 실제 임대차 계약서와 세무서에 신고하는 임대차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는 방법이다. 세무서에 신고할 때만 임대료를 줄이는 것이다.

임대인들이 신고하는 임대수입은 보통 실제 수입의 50%선이지만 A씨는 보통 임대업자들보다 훨씬 적은 20%만 신고했다.

이 경우 임차인들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경비(임차료)가 적게 신고돼 불만이 많지만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상가건물 임대차 거래에 있어 임대인들이 임차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IMF경제난 이후 일시적으로 임차인이 우월적인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이는 예외에 속하는 경우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얘기다.

월세를 전세로 신고하는 수법도 쓰인다.

서울 용산구에 아파트 2채를 각각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으로 임대하고 있는 B씨의 지난해 임대수입은 2600만원. 아파트 두채에서 나오는 월세수입 2400만원과 보증금 2000만원에 대한 이자(시중 정기예금 이자율 10%) 200만원을 더한 금액이다.

하지만 B씨는 임차인들과 각각 보증금 6000만원의 전세계약서로 바꿔 작성해 신고했다. 이에 따라 세무서가 산정한 B씨의 임대수입은 보증금에 시중 정기예금 이자율 10%를 곱한 1200만원. 수입의 절반 이상인 1400만원이 누락됐다.

임차인들은 ‘비용’으로 처리될 액수가 줄어들어 손해지만 임대인이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 임차하고 있던 집이나 사업장을 옮김으로써 입게되는 각종 손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임대인들의 탈세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채업자들의 탈세수법은 임대업자들보다 복잡하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추산한 94년말 우리나라 총 사채규모는 8조4000억원. 총 통화량의 6.3%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러나 이는 전문사채업자의 자금일 뿐이다. 일반사채업자들의 자금까지 합치면 20조원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세무전문가들의 추정.

사채업자들이 소득을 감추기 위해 가장 널리 쓰고 있는 수법은 속칭 ‘카드깡’.

서울시내 모 전자상가에서 가전제품 도소매상을 하는 C씨는 지난해 IMF사태로 경영난에 빠지자 카드깡으로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C씨의 수법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현금 100만원을 필요로 하는 고객이 나타나면 고객의 신용카드로 118만원어치의 전자제품을 판 것으로 매출전표를 끊은 뒤 현찰 100만원을 내준다. 그리고 며칠 뒤 신용카드 회사로 매출전표를 가져가 수수료 4만∼5만원을 뗀 뒤 현금 113만원을 챙기는 것이다.

부가세 신고땐 거래처나 자료상으로부터 매입세금계산서를 공짜로 얻거나 사서 신고한다. 매입세금계산서를 공짜로 얻으면 13만원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고 설령 사더라도 세금계산서의 3%에 해당하는 4만원 정도만 수수료로 떼어주면 된다.

사채업은 업자들의 ‘손’이 클 수록 탈세액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수도권 도시에서 파이낸스사를 운영하고 있는 E씨의 총 자금은 60억원. E씨는 주로 기업체로부터 어음을 연 30∼36%의 할인율로 사들인 뒤 만기때 이를 되찾는 방식으로 연간 18억∼21억원의 수입을 올린다.하지만 E씨는 실제 수입의 3∼5%만세무서에 신고하고 있다고 담당세무사는 귀띔했다.―끝―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임대-임차인 마찰 사례▼

‘큰소리치는 임차인과 쩔쩔매는 임대인.’

탈세는 종종 임대인과 임차인간의 ‘역학관계’를 바꿔놓는다. 임대료 축소를 통한 탈세사실을 알고 있는 임차인이 ‘칼자루’를 쥐고 임대인을 흔드는 것.

경기 S시 중심가에 8층짜리 빌딩 임대료로 생활하고 있는 B씨는 얼마전 홍역을 치렀다. 20년간 1층에 세를 얻어 약국을 운영하던 K씨가 문을 닫으면서 임대보증금 외에 권리금 8000만원을 요구한 것. K씨는 “그동안 세무서에 임대료를 70∼80%로 축소신고한 사실을 고발하겠다”고 B씨를 위협했다.

궁리 끝에 B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세무서 직원에게 은밀히 세무조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B씨의 경우 세무조사에 걸리면 적어도 3000만원은 나올 것 같다는 게 세무서 직원의 얘기였다.

결국 그는 3000만원을 K씨에게 주는 선에서 타협을 했다.

부동산 임대와 관련된 탈세가 워낙 만연하다 보니 주변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례들이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동아일보-참여연대 공동취재팀]

▽동아일보〓정동우차장 정성희복지팀장 하종대사건기획팀장, 정용관 홍성철 김상훈 권재현 선대인(이상 사회부) 신치영기자(경제부).

▽참여연대〓김기식정책실장 윤종훈전문가팀장(회계사), 하승수 박용대변호사, 최영태 이재호회계사 등 관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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