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전쟁을 부른 희고 고운 살결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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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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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육탁(肉鐸) 같다/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육탁을 치는 힘으로는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배한봉의 ‘육탁’에서>

대구(大口)는 ‘생선의 왕’이다. 입이 커서 대구다. 머리통도 큼지막해서 ‘대두어(大頭魚)’라고 불린다. 볼때기 살도 두툼하다. ‘뽈찜, 뽈탕’이 나올 수 있는 까닭이다. 목도 굵어서 ‘목살 찜’까지 있다. 입이 크면 먹성이 좋다. 평소에도 하마 같은 입을 쫘악 벌린 채 다닌다. ‘바다의 꿀돼지’다. 뭐든 꿀꺽 삼켜버린다.

대구에게도 무서운 게 있다. 인간이다. 바다표범도 있지만 그것들은 꼭 먹을 만큼만 잡아 먹는다. 인간은 끝이 없다. 어린 새끼들까지 아예 씨를 말린다. 대구는 영어로 ‘코드(Cod)’다.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케이프 코드(Cape Cod)’이다. ‘대구 곶’이란 말이다. 지금의 미국 매사추세츠 동남부에 있는 L자형 반도이다.

그 바다는 ‘물 반, 대구 반’이었다. 뱃전에 부딪칠 정도로 대구가 많았다. 오죽하면 ‘노를 저어가기 힘들다’고까지 했을까. 청교도들은 처음엔 대구 잡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점차 대구잡이로 자본을 쌓아갔다. ‘대구 귀족’의 탄생이었다.

1400년대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 사람들은 대구잡이로 떼돈을 벌었다. 어디서 잡아왔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유럽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금에 절인 대구’를 팔아 톡톡히 재미를 봤다. 북해나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는 바스크 배를 단 한 척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서 그 많은 대구를 잡아올까.

1497년 영국의 탐험가 존 캐벗이 그 비밀을 풀었다. 북아메리카 캐나다 뉴펀들랜드 대륙붕에 대구 떼가 무진장 있었다. 바스크 사람들은 그곳에서 거의 100년 동안 남몰래 노다지를 캤던 것이다. 캐벗은 “뱃전에 양동이를 매달아 두기만 해도 그 속에 대구가 가득 찼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고깃배들이 떼를 지어 몰려가기 시작했다. 증기선이나 저인망 어선으로 바닥까지 샅샅이 훑었다.

대구 씨가 말라갔다. 하지만 19세기 영국 과학자들은 “끄떡없다”고 말했다. 대구는 암컷 한 마리가 최고 800만 개의 알을 낳는데 웬 걱정이냐는 것. 사실 그 알들은 대부분 다른 물고기의 배 속으로 들어가거나, 폭풍에 휩쓸려 가기 일쑤였다.

1972년 9월, 바이킹의 후예 아이슬란드가 칼을 빼들었다. 영국 어선에 대해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200해리까지는 대구잡이를 못하게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른바 대구전쟁(Cod War)의 시작이다. 영국이 발끈했다. 어선들에게 영국 군함을 따라붙였다. 아이슬란드는 곧바로 국교를 끊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있던 나토 공군기지를 폐쇄하겠다고 맞섰다.

양국 간에 몇 번의 포격전도 벌어졌다. 부상자도 발생했다. 하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1976년 양국 간에 어업협정이 맺어졌다. 대부분 아이슬란드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인구 30여만 명에 불과한 약소국 아이슬란드가 막강 영국을 이긴 것이다. 역시 ‘반지의 제왕’ 나라답다. 이때부터 ‘200해리 어업권’이 국제적으로 통용됐다.

8∼11세기 바이킹은 ‘말린 대구’로 바다를 지배했다. 그걸 식량삼아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대륙에 갈 수 있었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 해군이 최강이었던 것도 바로 이 말린 대구를 충분히 확보한 덕분이었다. 거꾸로 영국이 미국 독립전쟁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은 ‘대구 집착’ 탓이었다. ‘대구무역 제한법’이 당시 식민지 뉴잉글랜드 보스턴 사람들을 화나게 한 것이다.

대구는 찬물에서 사는 흰 살 생선이다. 살이 너무 부드러워 쉽게 상한다. 회는 펄펄 살아있는 것만 친다. 대구탕은 고춧가루 없이 소금만으로 끓여도 시원하다. 미나리 콩나물과 궁합이 잘 맞는다. 하지만 너무 오래 냉동된 대구를 쓰면 거품이 많다.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겨울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제법 잡힌다. 2002년 3500마리가 잡히던 것이, 2008년 36만여 마리로 늘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산란처인 진해만 수심 90m 지점의 수온이 내려간 게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주민들은 수정란과 치어를 계속 방류한 덕분이라고 믿는다. 옛날엔 대구가 흔했다. 거제 옆인 통영조차 ‘집집이 아이만 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백석·1912∼1995)이었다. 조선 고종 땐 궁녀들 월급 대신 쌀 콩과 마른 대구를 주기도 했다.

대구는 요즘이 제철이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란 말도 그 뜻이다. 함박눈 내릴 때는 대구, 이슬비 내리는 봄엔 청어가 맛있다. 거제에선 생대구에 멥쌀을 넣어 ‘갱죽’을 끓인다. 감기몸살에 그걸 먹고 땀을 낸다. 요즘 거제 외포리 횟집에선 택배서비스도 해준다. 한 박스(암수 한 쌍)에 5만∼10만 원 정도. 생대구 마른 대구 모두 가능하다. 양지바위횟집(055-635-4327), 효진횟집(055-635-6340), 등대횟집(055-636-6426).

대구매운탕, 대구지리, 대구떡국, 대구김치찜, 대구연잎찜, 대구껍질채. 대구껍질강회, 대구조림, 대구죽, 대구장아찌, 대구포무침, 대구알찌개, 대구아가미젓, 대구알젓…. 고니는 수놈 대구의 정자덩어리이다. 맛이 일품이다. 큰 것은 500g이나 된다. 살짝 데치는 정도로 익혀야 맛있다. 노화방지 효과가 있다. 알엔 비타민이 풍부하다. 알집은 1∼2kg 정도 된다. 대구는 10년쯤 되면 1m 넘게 자란다. 수명은 13∼14년 정도. 7kg 이상 되는 것은 ‘누릉이’라고 부른다.

통대구는 대구의 배를 갈라 아가미와 내장을 제거한 후 통째로 말린 것이다. 진해에는 약대구란 것도 있다. 이건 배를 가르지 않고 말린 ‘알배기’다. 그냥 벌린 입을 통해 아가미와 내장을 제거한다. 배 속에 한약재와 진간장을 붓고 약 한 달간 말린다. 술안주로 그만이다. 대구과메기는 한 달 넘게 꼬들꼬들 말려야 한다. 머리 뚜껑이 열릴 때 딱이다. 안주로 쭉쭉 찢어 먹으며, 모락모락 뜨거운 김을 내보낸다.

‘내 어깨에는/굴뚝이 하나 있어/열 받거나/가슴에 연기가 가득할 때/그리로 그것들을 내보낸다.’

<정현종의 ‘굴뚝’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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