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 ‘무늬만 공모’]내정 인물 5순위 밀리자 후보늘려 낙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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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제점 인사 재추천 나중에 문제될라… 점수-순위 안매긴채 이름만 올리기도


“세 분 추천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런데 두 명만 더 뽑아주세요.”

서울의 사립대 A 교수는 지난해 한 공공기관의 기관장 공모과정에 추천위원으로 참여했다. 추천위원들은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3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며칠 뒤 주무부처 담당자로부터 후보를 늘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 추천위원들은 당초 순위 밖으로 밀렸던 지원자 두 명을 끼워 넣어 다시 리스트를 제출했다.

A 교수는 “최종 선임된 이는 추가된 두 명 중 한 명으로 추천위 평가에서 5등을 한 인사였다”며 “나중에 말썽이 될까봐 주무부처 담당자가 처음부터 추천할 때 점수, 순위를 매기지 말고 이름만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공공기관장 공모제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낙하산 인사 관행을 개선하고 각계각층의 유능한 적임자를 선발한다’는 도입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낙하산 인사, 정치권과 부처 간 나눠먹기 인사를 보기 좋게 포장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사립대 교수는 “추천위원을 해보면 공모제야말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정책이란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임명제는 그나마 잘못된 인사에 대한 책임이라도 물을 수 있다”면서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공모제는 잘못된 인사에 대해 책임질 사람도 없는 최악의 제도”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사기극처럼 운영되는 공공기관장 공모제가 정부 자체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공공기관장 공모제가 확대 시행된 2008년 6월부터 2012년 6월까지 4년간 공모로 뽑힌 공공기관장 198명(병원, 연구기관 제외)의 선임 전후 이력, 임기완수 여부를 전수 분석했다. 공모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던 일부 기관은 지원자, 추천위원과 연락해 추천과정을 확인했다.

분석결과 조사 대상 198명의 출신별 분포는 공무원 46.0%(91명), 민간 26.3%(52명), 정치권 23.2%(46명)였다. 해당기관 내부승진은 4.5%(9명)에 불과했다. 정치권은 새누리당(전 한나라당) 의원 및 당직자,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또는 청와대 비서실 출신 등이다.

2008년에 34.0%였던 정치권 출신 기관장은 2011년에 20.3%로 급감했고 현재는 14.3%까지 줄었다. 반면 공무원 출신 기관장은 2008년 38.0%로 시작했지만 2011년에는 절반에 육박하는 49.3%로 급증했다.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임기보장의 불투명성, 공모제에 대한 불신에 따른 지원자 감소 등의 영향으로 공무원 출신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공공기관장#낙점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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