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Digital]낙선운동 공판장 '확신범'-'실정법' 공방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40분


이교수는 86년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 ‘D검사와 이교수의 하루’에서 실정법 앞에 선 지식인의 고뇌를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

1월12일 서울지법 311호 법정. 시민단체 간부들이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지난 해 4·13 총선 당시 낙천 낙선운동을 주도해온 총선시민연대 간부들이다. 박원순(朴元淳)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최열(崔冽)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지은희(池銀姬) 여성운동연합 공동대표 등 모두 5명이 법정에 섰다. 혐의는 선거법위반. 맞은 편에는 이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공안부의 K검사가 앉아 있었다.

피고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간단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곧 검사의 직접 신문이 시작됐다. 대답은 주로 박처장이 했다.

(검사)“낙천 낙선 대상자 선정에 있어 특정 정파와 사전에 조율하지는 않았나요?”

(피고인)“절대 그렇지않습니다.”

(검사) “낙선운동에 사용된 총경비와 수입, 지출 내역을 밝힐 용의가 있는가요?”

(피고인) “이미 다 밝혔습니다. 부적절하게 쓰거나 부정한 돈은 없습니다.”

(검사) “부정적인 선거전략으로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조장하고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게 만드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에 대해 동의하는가요?

(피고인) “우리는 오히려 낙선운동을 통해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검사)“총선연대 간부의 생각을 국민에게 강요한 것은 아닌가요?”

(피고인) “그렇지 않습니다.”

(검사) “총선연대가 공들여 낙선시킨 지역구에서 낙선대상자를 제끼고 당선된 16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면서 어떤 감회를 갖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담당 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의 김대휘(金大彙)부장판사가 나섰다.

(김부장)“그런 걸 왜 묻습니까? 물을 필요 없는 질문입니다.

(검사)“총선운동이 정치적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김부장) “그런 질문은 하지 마세요.”

(검사)“재판장, 왜 자꾸 검사의 신문을 방해하십니까? 질문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김부장)“필요없는 질문이라는 재판부의 판단이에요.”

(검사) “검사는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신문내용을 만들어 왔는데 질문을 끊을 수가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재판을 진행할 거면 특별기일을 잡아 주십시오.”

(김부장)“오늘 공판이 바로 특별기일입니다.”

(검사)“이런 식이면 제대로 신문하기 어렵습니다.”

(김부장)“검사의 이의를 기각하고 사건을 추후지정합니다”

(검사)“이건 이의제기가 아닙니다. 검찰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부장은 사건의 추후지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법정에서 나갔다. 방청객들의 박수로 두시간에 걸친 공판은 끝났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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