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국정원은 ‘신동혁 거짓말’ 받아쓰기 했나

황호택 논설주간 입력 2015-01-28 03:00수정 2015-01-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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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스타의 몰락
거짓말 드러나면 또 다른 거짓말…삶 극화하는 PTSD?

28개국 언어로 출간된 책 쓴 저널리스트의 망신살
국정원과 북한전문가 농락당해

탄탄한 진실의 토대에서만 北 인권운동 지속가능성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나는 작년 11월 19일자에 <‘14호 수용소 탈출’ 신동혁은 ‘날조’인가>라는 제목으로 그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는 칼럼을 썼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가 작년 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인터뷰 교섭을 하면서 이 칼럼을 읽었음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항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가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신동혁은 2006년 한국에 들어온 뒤 하나원을 거쳐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을 치료하고 수기를 구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책이 만들어졌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인권실태의 잔혹상에 충격을 금치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운영체계와 인권실태’ 보고서를 펴낸 북한인권정보센터도 14호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은 신동혁이 유일해 교차확인을 할 수 없었다.

블레인 하든이 쓴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 14)’은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참고 자료로 해 새롭게 취재한 사실을 보탠 책이다. 28개국 언어로 출간돼 신동혁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스타’가 됐다. 신동혁은 수많은 신문 방송과 인터뷰를 했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에도 그의 증언이 수록됐다. 신동혁은 ‘세상 밖으로 나오다’에 없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14호 수용소 탈출’에서 새롭게 선보였다.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모의하는 것을 엿듣고 밀고해 두 사람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14호에서 지켜봤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동혁과 가족은 완전통제구역 14호(평남 개천)가 아니라 18호가 있던 동네에서 살았음이 한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18호에서 28년 수감 생활을 하다 탈북한 김혜숙은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이 살인 공범으로 18호에서 처형됐고 나도 처형 현장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죄목도 탈출 모의가 아니라 살인이었다. 김혜숙은 “신동혁이 14호에서 만났다고 한 삼촌 신명섭(‘세상 밖으로 나오다’ 23쪽)과 백설희(농업과학자·같은 책 208쪽)도 18호에서 살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강명도 씨는 “매부가 14호 수용소 부소장을 했다. 기관총을 설치한 망루가 곳곳에 있고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14호에서 탈출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신동혁은 책에서 동료가 전기철조망을 넘다 달라붙었을 때 그 위로 타고 올라가 탈출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혜숙은 “나처럼 18호에서 탄광노동을 했다고 떳떳하게 밝히고 인권운동을 하면 되는데 왜 그가 거짓말을 계속하는지 알 수 없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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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은 거짓말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6세 때 14호에서 18호로 옮겨왔다고 말을 바꾸었다. 요덕수용소 출신인 강철환이나 강명도 김혜숙 모두 “14호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반박한다. 북한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TV’에 나온 아버지가 아들이 6세 때 찍었다는 사진을 공개하자 신동혁이 그렇게 둘러대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18호에 살았던 다른 탈북자는 “김일성 생일날 선물로 받은 옷을 입고 찍은 기념사진 속의 아이가 신동혁이 맞다면 1980년대에 신동혁 가족은 이미 수용자 신분에서 ‘해제’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1982년생인 신동혁은 6세 이후에는 수용소 인간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든은 ‘14호 수용소 탈출’을 고쳐 쓰겠다고 하지만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들이 거짓으로 판명된 마당에 리모델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하든은 신동혁을 검증하기 위해 10여 명의 다른 탈북자와 북한 전문가, 그를 조사했던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 사람들도 취재했다고 후기에 적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의 도쿄특파원이었던 하든은 통역을 통해 신동혁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어의 장벽에 더해 14호에서 탈출한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이 하든이 처한 난제였고 북한을 취재하는 저널리즘의 공통된 고민이다.

거짓말로 자신의 삶을 극화하는 신동혁은 심각한 PTSD 증상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국가정보원 조사의 허술함도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국정원에 신동혁 관련 자료를 요청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신동혁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국정원이 무능했거나, 신동혁의 거짓 연극을 알면서도 방치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북한인권 운동도 탄탄한 진실의 토대 위에 서 있지 않으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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