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괴물’2006년 삼키다…류현진 프로야구 최초 MVP-신인왕 석권

입력 2006-11-03 03:00수정 2009-09-29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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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기 기자
류현진이 왼손에 신인왕 트로피를 잡은 채 오른손에 든 MVP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MVP 트로피는 2000만 원 상당의 순금으로 제작됐다. 강병기 기자
2004년 4월의 봄날이었다. 봄은 시작의 계절. 야구팬들에게 봄은 시즌 개막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갓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선수에게 그해 봄은 긴 어둠의 시작이었다.

그는 많은 시간을 운동장이 아닌 버스 안에서 보내고 있었다. 인천에 있는 집에서 병원이 있는 서울 송파구까지는 왕복 5시간이 걸렸다.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귀가하는 지루한 일상이 7개월 동안 반복됐다.

○고2 때 팔꿈치 수술 연고구단도 외면

프로야구 25년 역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한 ‘괴물 투수’ 류현진(19·사진).

2년 반쯤 전 그의 일상은 암울하기만 했다. 동산고 1학년 때 벌써 137km의 공을 던졌지만 2003년 가을에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선수 생명의 위기였다. 방법은 수술밖에 없었다.

2004년 봄 그는 서울 송파구의 김진섭 정형외과에서 오른 손목 인대를 떼어 내 왼쪽 팔꿈치에 붙이는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수술이라니…. 그리고 수술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는 재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류현진은 달랐다. “수술을 하면 아프지 않고 던질 수 있다고 믿었다. 얼른 재활을 끝내고 친구들과 야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베테랑 선수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재활의 시련을 그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회복은 아주 빨랐다. 이듬해 2월 전북 군산의 훈련캠프에서 열린 군산상고와의 연습 경기. 겨울이었는데도 그는 최고 144km의 공을 던졌다.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의 눈이 단숨에 그에게 꽂혔다.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선 팀의 우승을 이끌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수술 경력은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연고 구단인 SK가 1차 지명에서 그를 외면했다. 가장 먼저 2차 지명을 할 수 있었던 롯데도 그를 지나쳤다.

결국 그는 한화의 지명을 받고 계약금 2억5000만 원에 사인했다.

○김인식 감독 조련에 출발부터 승승장구

한화와의 만남은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화에는 ‘재활의 신’, ‘믿음의 야구’로 유명한 김인식 감독이 있었다. 송진우 구대성 등 어릴 적 TV에서만 지켜보던 대선배 투수도 있었다.

스프링캠프부터 김 감독은 일찌감치 류현진을 점찍었다. 김 감독은 “선발로 기용할 생각이다. 10승을 할 재목”이라고 평가했다.

당시엔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수술 경력이 있는 풋내기 신인 투수가 어떻게 10승을 한단 말인가. 투수층이 얇은 한화니까 선발 투수가 될 수 있는 거지.’ 주위의 분위기는 그랬다.

4월 12일 LG전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류현진은 말이 아닌 실력으로 이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7과 3분의 1이닝 동안 3안타 1볼넷 10탈삼진 무실점 승리. 전광판에는 최고 구속 151km가 찍혔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5월 11일 현대전에서 첫 패를 당할 때까지 4연승 행진. 이후 다시 6연승을 달렸다.

높은 데서 힘 있게 뿌리는 그의 공은 ‘언터처블(손댈 수 없는)’이었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삼성 양준혁은 “전혀 신인 같지 않았다. 10년차 투수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표정이나 구위, 구질 등 모든 면에서 타자를 압도했다. 한국엔 그런 투수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10년차급 배짱… 선 감독 “그때 나보다 낫다”

그의 배짱은 ‘국보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선동렬 삼성 감독도 인정했다. 선 감독은 “그 나이 때의 나와 비교하면 훨씬 배짱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돌한 듯 보이지만 꾸밈없고 천진난만한 류현진은 쉽게 팀 분위기에 적응했다. 공 정리나 아이스크림 심부름 등은 모두 막내인 그의 몫. 싫은 표정, 군소리 한번 없이 선배들의 말에 따랐다. 구대성은 그런 류현진을 귀엽게 보고 대견스러워했다. 틈틈이 류현진을 따로 불러 체인지업 등 자신만의 비법을 전수했다.

류현진은 학습 능력도 빨랐다. 투수들은 한 가지 구질을 익히는 데 대개 1, 2년이 걸린다. 그러나 류현진은 시즌 중 구대성에게 체인지업과 짧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배워 곧바로 실전에 활용했다.

첫해 200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피로가 쌓여 포스트시즌에서는 큰 활약을 못 했지만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그는 MVP 후보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사족 하나. MVP를 선정하는 시상식장에 참석하러 인천 집에서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그는 태평스럽게 잠만 잤다고 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일문일답▼

―소감은….

“좋은 상을 주신 기자들과 같이 뛴 감독, 코치, 선배들께 감사드린다. 매 경기 오셔서 응원하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본인이 예상했던 결과와 차이가 있나.

“생각보다는 내 표가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만약 MVP가 이대호 선수에게 돌아갔다면….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 부진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MVP와 신인왕 중에 더 받고 싶었던 것은….

“신인상도 좋지만 그래도 MVP가 더 좋은 걸로 알고 있다(웃음).”

―앞으로 목표는….

“올해처럼만 하면 좋겠지만 프로 데뷔 때 얘기했던 것처럼 10승을 목표로 매 경기 열심히 하겠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말말말▼

△“나도 놀랐다.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한화 김인식 감독, 시즌 초반 10경기 정도를 마친 뒤)

△“송진우와 구대성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 왼손 투수는 물론 선동렬 못지않은 대투수도 될 수 있다.”(김인식 감독, 올 시즌 전반기를 마친 뒤)

△“한 번 붙여 보려고 했는데 류현진이 빠져버렸네.”(현대 김재박 감독,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신인 류현진과 장원삼의 맞대결을 기대했는데 아쉽게 됐다며)

△“정말 귀엽지 않나요?”(현대 이택근,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때 연습 중인 류현진을 보며)

△“현진이 때문에 제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니까요.”(한화 포수 신경현, 현대와의 플레이오프 때 류현진이 방송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류현진이 나왔을 때 1년에 한번은 우리 팀이 칠 수 있을 것.”(삼성 선동렬 감독,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류현진이 나왔다는 얘기에)

▼해외서도 흔치 않은 기록▼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우리보다 역사가 긴 미국과 일본에서도 흔치 않다.

130년 역사의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2명 나왔다. 1975년 프레드 린(보스턴)과 2001년 일본의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사진). 두 선수 모두 왼손 타자였다.

린은 데뷔 첫해 타율 0.331에 21홈런, 105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17시즌 통산 성적은 타율 0.283에 306홈런, 1111타점. 이치로는 미국 진출 이전에 이미 일본에서 실력이 검증된 스타였다. 그가 2001년에 세운 성적은 타율 0.350(1위)에 8홈런, 127득점(2위), 56도루(1위). 안타는 242개로 메이저리그 신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치로는 일본 프로야구 데뷔 첫해인 1992년에는 성적이 좋지 못해 신인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첫 MVP를 차지한 것은 1994년이다.

1937년에 출범한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신인 MVP는 2번 있었다. 니혼햄의 기다 이사무가 1980년, LA 다저스에서 박찬호(샌디에이고)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노모 히데오(당시 긴테쓰)가 1990년에 차지했다. 당시 기다는 22승 8패 4세이브에 평균자책 2.28을, 노모는 18승 8패에 평균자책 2.91을 기록했다.

한미일 역대 MVP―신인왕 동시 수상자
국가선수연도성적
한국류현진한화200618승 6패 1세, 평균자책 2.23
미국프레드 린보스턴1975타율 0.331, 21홈런, 105타점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2001타율 0.350, 8홈런, 127득점, 56도루
일본기다 이사무니혼햄198022승 8패 4세, 평균자책 2.28
노모 히데오긴테쓰199018승 8패, 평균자책 2.91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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